목록 트위터 페이스북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바로가기복사 PDF
제목 신령한 것을 사모하는 자
설교자 강사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고전12:1-7 날짜 2009.04.05
이 시간에는 2009년도 대학, 가나안 선교회 헌신예배로 드립니다. ‘신령한 것을 사모하는 자’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할 때, 여러분들의 마음에 신령한 것에 대한 사모함이 불같이 일어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1. 신령한 것을 사모하려면

“신령한 것”이란 빛에 속한 영의 세계를 뜻합니다. 천국에 있는 모든 것은 영원히 썩지 않으며, 빛도 바래지 않습니다. 천국에는 악이 전혀 없고 선만 가득합니다. 어둠이 전혀 없고 오직 빛만 있습니다. 그리고 슬픔도, 아픔도, 힘듦도 없으며 오직 기쁨과 행복과 평안만 있습니다. 따라서 신령한 것을 사모하라는 것은 이러한 천국을 사모하라는 의미이며, 또한 자신의 마음이 천국처럼 되기를 사모하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육의 세계인 첫째 하늘에 살고 있고, 천국은 영의 세계인 셋째 하늘에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신령한 것을 맛보며, 더 사모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가능합니다. 요한복음 14장 17절 후반에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말씀한 대로 성령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의 마음속에서 역사하고 계십니다. 고린도전서 12장에는 이러한 성령의 역사의 구체적인 예들이 나옵니다. 우리 마음 안에 계시면서 우리가 예수님을 구세주로 온전히 믿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며, 또한 각 사람에게 신령한 은사를 주시는 것입니다. 7절에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했습니다.

우리가 성령님을 통해 하늘의 신령한 것을 맛보고 체험하면 여러모로 유익한 것이 많습니다. 지금부터 신령한 것을 사모할 때의 유익함을 세 가지로 말씀드릴 때, 더욱 신령한 것을 사모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신령한 것을 사모할 때의 유익점

1) 헛된 세상의 것을 쉽게 버릴 수 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비유를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여러분이 평소에 배를 좋아한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그런데 꿀 한 숟가락을 먹고 난 후에 곧바로 배를 먹으면 평소에 먹던 배 맛이 어떻게 느껴질까요? 앞서 먹은 꿀이 너무 달기 때문에 나중에 먹은 배는 마치 무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신령한 것을 맛본 사람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에게서 아무런 맛도, 재미도 느끼지 못합니다. 그래서 세상의 것을 쉽게 버릴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신령한 것을 맛본 후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신령한 것을 한 번 맛보니,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은 너무도 무익하고 오히려 해가 됨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이 세상의 것들이 배설물처럼 여겨지는데, 아까워하며 버리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당장에 버릴 것이고, 옷이나 몸에 묻은 것은 깨끗이 씻어낼 것입니다. 혹여 다시 묻을까 경계도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단 한 번 주님을 만나는 체험을 통해, 철저히 세상을 끊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핍박했던 자신을 용서하시고 오히려 사도로 삼아 주신 은혜에 감사하여 자기를 깨트려 나갔습니다. 이렇게 영으로 변화되는 만큼, 사도 바울은 더 깊은 영의 세계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성령님과의 밝은 교통 가운데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깨닫게 되었고, 영으로 천국에 다녀오는 체험도 했습니다. 그래서 발은 비록 육의 땅을 딛고 살아가며 때론 핍박과 고난도 당했지만, 마음은 항상 천국에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신령한 은혜는 세상의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 은혜로 인하여 세상 그 어디서도 얻을 수 없는 평안과 기쁨과 감사를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신령한 은혜 안에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 참된 소망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은혜를 받으면 이 세상에 속한 모든 헛된 것을 쉽게 버릴 수 있는 힘이 옵니다. 세상의 미혹을 능히 떨쳐 버릴 수 있는 능력이 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버지께서 싫어하시는 것을 버리면 버릴수록, 영적인 믿음과 참 소망이 채워집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한 마음을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오직 신령한 것에만 마음을 두시기 바랍니다. 골로새서 3장 2절에도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말씀하셨습니다. 위엣 것, 곧 신령한 것을 사모함으로 땅엣 것을 미련 없이 버리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 능력이 임하며, 더 나아가 권능도 임할 수 있습니다.
신령한 것을 사모하는 사람에게는 능력이 임합니다. 더 나아가 권능도 임할 수 있습니다. 신령한 것을 사모하는 사람은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으로 들어가면 능력을 받을 수 있고, 온 영으로 들어가면 권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저는 처음 하나님을 만났을 때부터 열심히 말씀대로 살았습니다. 죽음 앞에서 영생을 얻게 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그저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열심히 부흥성회를 찾아다녔습니다.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자리라면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 제가 처음 주님을 만났을 때에 느낀 큰 은혜와 사랑의 감동을 말씀과 기도를 통해 계속해서 받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성경도 사모함으로 읽었습니다. 초신자 때부터 시간만 나면 기도를 했던 것도 아버지의 은혜를 너무 사모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은혜를 사모하여 기도를 즐겨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저는 점차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처음부터 온전히 깨닫지는 못했지만, 깨달은 것은 그대로 행했습니다. 항상 기도하여 성령이 충만한 상태였기 때문에 말씀대로 사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하지 말라’ 하신 것은 하지 않고, ‘하라’ 하신 것은 그대로 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지키라’ 하신 것은 지키고, ‘버리라’ 하신 것은 버릴 수 있었습니다. 혹여 단번에 버려지지 않는 것이 있으면, 3일 금식도 하고 7일 금식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비진리의 마음을 어떻게든 빨리 버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간절히 영을 사모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면서, 기도의 응답도 척척 왔습니다. 요한일서 3장 22절에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하신 말씀대로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집사일 때도 아픈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면, 치료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가벼운 질병뿐만 아니라 중한 질병에서도 동일한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그때는 영적인 원리를 잘 몰랐지만, 제가 영으로 들어가는 만큼 하나님의 능력이 크게 나타났던 것입니다. 만 3년의 연단을 통해 영으로 들어간 후에는, 더 크고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이 임했습니다. 그리고 온 영의 단계에 들어오면서부터는 권능이 나타났습니다. 교회 개척 즈음부터, 성령의 권능은 더욱 놀랍게 나타났습니다. 누구든지 영을 사모하여 영의 마음이 되면 위로부터 능력이 임합니다. 어둠의 세력을 물리치는 권세도 임합니다. 더 나아가 온 영을 이루고 불같이 기도하면, 권능도 받을 수 있습니다.

영의 마음, 온 영의 마음을 이뤘다는 것은 천국과 같은 3차원의 공간을 소유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2차원의 존재인 사단이나 마귀도, 1차원인 이 세상의 일들도 공의 가운데 능히 지배할 수 있습니다. 천국 시민으로서의 권세를 천국에 가서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평신도라 할지라도 권능을 행할 수 있다면 누구든지 손수건 집회에 보내겠다고 하십니다. 주의 종, 레위족, 장로 등과 같은 직분을 떠나, 영으로 하나 된 사람 누구에게나 쓰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직분에도 있지 않으며, 오직 능력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더욱 신령한 것을 사모하여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아 행함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맺게 됩니다.
신령한 것을 사모하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하든지, 세상에 속한 일을 하든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맺어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영을 사모하여 영혼이 잘된 사람은 성령의 밝은 음성과 주관을 받아 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힘과 지혜로 할 수 있는 것 이상의 열매를 낼 수 있습니다. 사회와 가정에서도 인정받고 사랑받는 존귀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다니엘과 요셉은 이방나라에 잡혀간 포로와 종의 신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법을 지키며 영의 마음으로 살아가니, 위로부터 뛰어난 지혜와 명철이 임했습니다. 큰 나라의 총리로서 부족함이 없도록 영육 간에 자질을 두루 갖출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왕과 백성들의 인정을 받고, 사랑도 받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니엘과 요셉에게는 하나님의 권능이 이런 모습으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아 행했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들이 살았던 시대마다 그들을 통해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섭리를 온전히 이뤘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신령한 것을 사모하여 영으로 들어올수록, 여러분은 영이신 하나님의 마음을 더 깊이 깨닫게 됩니다. 성령의 음성을 더 밝히 들을 수 있고, 성령의 주관도 더 정확히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성령의 음성과 주관에 순종만 해나간다면, 공부도 문제되지 않으며 사업도 문제되지 않습니다. 오직 범사가 잘되고 형통하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뛰어난 실력자들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전도를 한다면, 쉽게 그 말을 무시하거나 반박할 수 없습니다. “나는 원래 지식도 지혜도 부족한 사람인데,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으로 이렇게 일이 형통하고 잘됩니다. 당신도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이러한 고백은 영적인 권세가 있기에 상대방에게서 어둠이 물러갑니다. 모두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열매, 곧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증거가 그의 삶에서 분명히 보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평범한 사회인으로 살아간다 해도, 많은 영혼들을 구원으로 인도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헌신자 여러분,
신령한 것을 사모하는 사람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제는 신령한 것을 더욱 사모하심으로 이 세상의 것들이 여러분의 마음에 틈타고 들어올 기회를 주지 마시기 바랍니다. 받은 은혜를 잃지 않도록 진리 안에서 마음을 지키고, 아직 남아 있는 육의 마음을 미련 없이 벗어 버리므로 여러분의 마음을 오직 영으로만 채워 가시기 바랍니다. 많은 분이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와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귀한 열매를 내며 각각의 분야에서 영광 돌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랫글 : 참 가치
윗글 : 나의 나됨은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