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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팔복(7)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마5:1-12 날짜 2002.04.21
오늘은 팔복 일곱 번째 말씀으로 화평케 하는 자에게 임하는 축복에 대해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1.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본문 마태복음 5:9을 보면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다'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는 아담 이후로 죄인된 인류와 하나님 사이에 친히 화목제물이 되어 주심으로 하나님과 모든 인류 사이를 화평케 하셨습니다. 인류와 하나님 사이에 죄의 담을 헐고 화목함을 이루시고자 대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시고 우리와 하나님과의 사이를 화평케 하신 것입니다.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화평케 하는 직책을 감당하셨기에 온전히 하나님의 아들이라 인정을 받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범사에 화평케 하는 자가 될 때에 하나님의 아들이라 인정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해도 모든 자녀가 다 똑같은 것은 아닙니다. 한 집안에 여러 자녀들이 있어도 그들이 다 같은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고 같은 왕자라 해도 왕세자와 그 밖의 왕자는 다르며 여러 자녀 중에도 부모의 입장에서 더 마음이 가고 사랑스러운 자녀가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 해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녀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자녀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신속하게 마음의 죄악을 벗어 버리고 오직 말씀대로 순종하며 사는 반면, 어떤 사람은 여전히 죄악을 벗어 버리지 못하고 불순종을 거듭하여 하나님을 서운하게 하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수많은 아픔과 고뇌를 감내하시면서도 인간을 경작해 오신 까닭은 바로 예수님을 닮은 참자녀를 얻으시기 위함입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아들은 바로 예수님을 닮아 하나님의 마음에 꼭 맞는 참아들을 의미하지요. 십자가에 죽기까지 영혼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하나님께 순종하셨던 예수님처럼 행하는 사람이 바로 화평케 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칭함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2.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아야 주를 뵈올 수 있어

그렇다면 여러분은 화평케 하는 자라 할 수 있으신지요? 물론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들어서 배우게 되면 악한 의도로 화평을 깨는 일은 별로 없게 됩니다. 그렇지만 아직 온전하지 못하여 자기 의가 남아 있는 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상대를 불편하게 하는 경우가 있지요.
그러므로 여러분은 '자신의 유익을 위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요구함으로 힘들게 하지는 않았는가, 다른 사람들이 상처받고 힘들어하는 것을 알면서도 내 주장을 계속 밀고 나가지는 않았는가, 내가 윗사람이니까 다른 사람들이 내게 순종해 주어야 한다고 고집하지는 않았는가' 스스로를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역사 속에서 이런 것을 깨우쳐 볼 때 나는 과연 화평케 하는 사람인가 어느 정도는 점검이 되어질 것입니다.
히브리서 12:14을 보면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자신이 정당한 것 같아도 나로 인해 상대가 불편해하고 소리나며 부딪치는 일이 있다면 하나님 앞에 합당하지 않은 면이 있음을 깨달아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아야 합니다. 그럴 때라야 악은 모양도 없는 성결된 사람이 되어 주를 뵈올 수 있는 것입니다.

3. 화평케 하는 자가 되려면

1) 먼저 하나님과의 화평을 이루며 또한 자신과의 화평을 이뤄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화평을 이룬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사이에 죄의 담을 만들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주심으로 우리와 하나님과의 사이에 막힌 죄의 담을 헐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를 믿는다 하면서도 여전히 죄 가운데 살면 죄의 담이 그대로 있는 것이고 하나님과 화평하지도 못한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서 범죄하지 않는 것이 화평케 하는 자의 첫 번째 조건이지요.
다음으로 자기 자신과의 화평은 마음의 악을 벗어 버림으로 성령의 소욕을 항상 좇아갈 때 이루어집니다. 사람이 마음에서 악을 버리지 않은 이상은 상황과 조건에 따라 온갖 죄악이 요동하게 되므로 스스로 고통받게 되어 평안할 수가 없으며 이렇게 자신과의 싸움에서 고통받는 한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기도 힘들지요.
그러므로 죄로 인한 마음의 싸움을 마치고 온전히 성령의 주관을 따라 진리를 좇아 나갈 때에 자신과의 화평이 이루어지며 다른 사람들과도 참된 화평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2) 양선의 마음을 이루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12:19-20을 보면 예수님의 마음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말씀하고 있지요.
이처럼 사람들과 다투지 않고 자랑하거나 높아지려는 마음이 없으며 요란하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양선입니다. 상한 갈대나 꺼져 가는 심지와 같이 심히 악한 사람, 믿음이 연약한 사람도 사랑하며 어찌하든 잘 되기를 원하므로 상대를 마음에 품어 주지요. 이런 사람은 어떤 일을 이룰 때 여러 사람의 마음을 두루 살펴 모든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게 감싸 주며 포용해 줍니다.
주의 일꾼들 중에는 뜨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충성하는데 자신이 있는 곳에 화평이 깨어짐으로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어떤 일을 이룰 때 그것이 하나님 나라에 유익이겠다 생각되면 몇몇 사람이 불편해하거나 반대한다 해도 자신이 보기에 더 좋은 쪽을 택하여 추진해 나가지요. 그러면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는 주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는 열심은 기특히 여기시지만 실족하고 상처받는 영혼들에 대해서는 마음 아파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크게 이루는 것보다도 먼저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그 마음을 닮아 주기를 더 원하십니다. 그러니 비진리가 아니라면 상대의 연약한 믿음도 고려하여 화평을 좇아가는 것이 아버지의 마음에 더 맞는다는 사실입니다.

3)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상대의 유익을 구해야 합니다
창세기 13장을 보면 아브라함과 그의 조카 롯이 함께 거할 때 아브라함과 롯의 가축을 돌보는 목자들 사이에 다툼이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아브라함과 함께 거함으로 롯도 축복을 받아 두 사람의 가축이 심히 많아졌고 그로 인해 가축을 먹일 물이 부족하여 서로 다투는 일이 생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거처를 나누게 되었는데 이 때 아브라함은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하며 조카에게 먼저 선택권을 줍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은 조금도 자기 유익을 좇지 않고 중심에서 조카가 더 좋은 땅을 택하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화평을 이루었기에 하나님께 더욱 큰 축복을 받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마음이라면 마태복음 5:39-41 말씀처럼 누구든지 오른편 뺨을 치면 왼편도 돌려 대며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억지로 오 리를 가자면 십 리도 동행할 수 있습니다. 또한 마태복음 5:44에 말씀하신 대로 원수를 사랑하며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오히려 축복의 기도를 함으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아들이 될 수 있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히시면서도 오히려 못박는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이렇게 중심에서 원수까지도 사랑하여 모든 사람 앞에 상대의 유익을 구해 줄 때라야 참으로 화평이 이루어지며 하나님의 참아들로서 새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4) 자기를 부인하고 상대를 위해 썩어지는 밀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마다 믿음의 단계가 다르고 자기 의가 다르며 생각이 다릅니다. 타고난 성품과 받은 교육, 자라온 환경과 습관도 다르기 때문에 옳다 생각하는 것이 다르고 좋아하는 것이 다르지요. 이렇게 사람마다 기준이 다 다른데 서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주장하면 화평이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내가 옳다 해도, 상대로 인해 내가 좀 불편하더라도 상대를 위해 희생할 줄 알아야 하며 그럴 때 화평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화평하기 위해 오래 참고 상대의 허물을 덮어 주는 것과 상관하기 싫어서 모른 척하는 것은 다릅니다. 화평을 이룬다 해서 상대가 범죄하여 사망의 길로 가는데도 그냥 두거나 타협하여 비진리를 행하라는 것은 아니지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을 이루되 반드시 진리 안에서 화평을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믿지 않는 가족이 우상 앞에 절을 하라거나 직장 동료들이 회식자리에서 술을 권한다면 단호하게 유혹을 물리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쪽을 택해야 합니다. 비진리를 행하면서 사람과 화평을 좇는 것은 전혀 하나님의 뜻이 아니며 이것은 팔복과도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방법에 있어서는 지혜롭게 해야 합니다. 상대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잘 섬기며 열심히 일하여 마음을 사고 온유한 마음으로 상대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설득함으로 모든 분야에서 화평을 이루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 성결되고 완전히 행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시며, 그런 참자녀를 얻기 위해 선악과를 두시고 오늘날까지 인간을 경작해 오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닮은 자녀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자녀라 인정받기 위해서는 바로 화평케 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원수까지라도 사랑하신 주님의 마음을 닮아 모든 사람과 화평을 이루는 자가 되어 하나님의 참아들로 인정을 받으며 천국에서도 하나님의 보좌가 계신 새예루살렘에 거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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