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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팔복(2)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마5:1-12 날짜 2002.01.27
지난 시간에는 팔복 중에 첫 번째로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임하는 축복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애통하는 자에게 임하는 축복에 대하여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1. 육적인 애통이 아닌 영적인 애통을 원하시는 하나님

마태복음 5:4에 보면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씀했습니다. 이는 복 있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늘 인상을 찌푸리고 슬퍼하며 살아야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지요. 이 말씀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애통에는 육적인 애통과 영적인 애통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의 악함과 감정 가운데서 나오는 애통은 하나님과 상관이 없으며 축복을 받지도 못하는 육적인 애통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가난하여 슬퍼하고 질병과 연약함으로 한탄하며, 혹은 어떤 일을 자신의 욕심대로 이루지 못함으로 애통하고 낙심합니다. 슬픈 영화를 보고 울기도 하며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당하거나 누군가 자신을 서운하게 할 때 가슴아파하고 애통하지요.
이런 애통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니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하셨고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4:4) 말씀하셨지요. 이는 어떤 시련이 있을지라도 우리는 구원받고 천국을 약속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어려움이 있을 때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께 아뢰면 기도의 응답을 받을 줄 믿기 때문에 온전히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지요.
그러므로 복 있는 사람의 애통은 이런 육적인 애통이 아니라 영적인 애통인데 영적인 애통이란 바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서 애통하는 것을 말합니다.

2.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영적인 애통의 예

첫째로, 자신의 죄나 사명감당하지 못함으로 인한 회개의 애통이 있습니다.
주님을 영접하여 성령을 받으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죄로 인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사실을 깨달음으로 눈물, 콧물을 흘리며 회개하고 애통합니다.
그런데 죄를 회개하여 애통하고 은혜를 받았다 해도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또다시 애통할 일이 생깁니다. 믿고 구원받았으니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서 죄악을 벗어 버리고 성결되어 나가야 되겠는데 믿음이 연약한 가운데 다시 범죄하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죄악이 발견되는 것도 다시 애통하면서 열심히 기도하고 금식하며 결국은 다 벗어 버려야 합니다.
믿음으로 행하여 어느 정도 신앙이 있고 충성하는 일꾼이 되면 이런 회개의 애통은 더 이상 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범죄하고도 애통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더 이상 범죄하지 않음으로 애통할 일을 아예 만들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사명감당을 못했을 때도 회개의 애통을 하게 됩니다. 직분자로서 마땅히 성도의 본이 되어 기도하고 전도하며 열심히 심방하여 부흥시켜야 하고 맡은 분야에서 열매 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을 때 이로 인해 마음을 찢으며 애통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형제가 죄로 인해 사망의 길로 가므로 애통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범죄하여 사망의 길로 가고 있을 때, 또 형제가 시험 들어 힘을 잃고 있을 때 마땅히 그에게 권면해 주고 힘을 줘야 하는 것이며 자신의 일과 같이 애통하여 기도할 수 있어야 하지요. 불쌍하고 긍휼한 마음 가운데 자신이 대신하여 회개하며 상대가 진리로 행할 수 있도록 애통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애통하고 기도해 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허물과 티를 보고 판단하고 정죄하며 찌르는 말로 고통을 주거나 다른 사람에게 그 허물을 전하기도 하지요. 이런 사람은 하나님 앞에 결코 합당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심히 범죄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샀을 때 그들을 대신하여 회개하며 자신의 생명을 걸고 하나님께 자비를 간구했던 모세처럼 자신을 힘들게 하는 사람이라도 사랑하여 대신 회개하며 기도하는 마음이 바로 하나님 앞에 합당한 마음인 것이지요.
이 외에도 영혼 구원을 위한 애통이 있습니다.
주변에 있는 가족, 일가 친척이나 이웃이 사망의 길을 가고 있을 때 그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며 애통하는 것이지요. 또 세상에서 멸망으로 가는 무수한 영혼들을 위해 애통하며 나라와 민족에 대한 애통, 교계에 대한 애통, 하나님의 나라를 훼방하는 일들에 대한 애통이 바로 하나님 앞에 합당한 영적인 애통입니다.

3.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염려하며 애통하였던 사도 바울

고린도후서 11장에는 복음전파를 위해 무수한 고난을 당했던 사도 바울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여러 차례 옥에 갇히며 매도 수없이 맞고 파선함으로 일주야를 바다에서 지내며 자지 못하고 주리고 목마르며 춥고 헐벗은 일도 여러 차례 있었다 했습니다.
그러나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고후 11:28) 하여 사도 바울이 염려하는 것은 교회를 위해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서였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이 매를 맞고 피를 흘리며 차꼬에 채여 깊은 감옥에 갇힌 것을 인하여 애통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않더냐" 하며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서 염려하고 애통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애통하는 사람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굳게 서지 못할 때, 교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못할 때 이를 인해 애통하고 염려합니다. 또 주의 이름으로 핍박을 받을 때 핍박받는 것이 힘들어서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영혼을 위해 애통하고 기도하게 되며 세상이 흑암이 짙어 가는 것을 볼 때 애통함으로 더 크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고 무수한 영혼들이 구원받게 하시라고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4. 행함이 따르는 참된 애통을 할 때 임하는 축복
말로만 '안타깝다' 하고 눈물만 흘린다고 해서 참된 애통이 아니요, 행함이 따르는 애통이라야 합니다. 예를 들어, 죄로 인해 애통한다면 말로만 회개하고 계속 같은 죄를 범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의 열매를 맺음으로 죄악을 버려야 합니다. 영혼들을 위해 애통한다면 그들을 위해 열심히 기도, 전도, 심방하는 행함이 따라야 하지요.
이렇게 참된 애통을 할 때 임하는 축복이 있는데 곧 저희가 위로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어떤 위로를 받기에 축복이라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는 사람들이 주는 위로와는 다릅니다.
요한일서 3:18에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하신 말씀대로 하나님의 사랑은 행함과 진실함이 있는 사랑이지요. 배고픈 사람에게는 양식을 주시고 질병이 있는 사람은 치료해 주시며 마음의 소원에는 응답해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영적인 애통을 하여 하나님의 위로를 받을 때는 반드시 그 열매가 있습니다.
시편 32:1에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말씀하신 대로 범죄함으로 인해서 마음을 찢고 애통할 때는 죄사함의 축복이 오지요. 이렇게 용서받아 죄의 담이 헐어지면 충만함과 기쁨이 임하며 그 충만함 가운데 위로부터 능력과 은혜도 주시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능히 죄악을 벗어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죄악을 벗어 버리면 그만큼 영혼이 잘 되고 그러면 요한삼서 1:2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하신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그의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하게 하시지요. 곧 마음의 소원에 응답하시며 가정과 사업터, 일터에 넘치는 축복으로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사명감당을 못해서 애통하는 사람에게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영혼들을 위한 애통의 기도와 행함은 맡은 분야에 부흥의 열매를 맺게 하시지요. 그리고 이러한 애통 가운데 죄를 버리고 성결되어가는 만큼 사도 바울과 베드로와 같이 큰 권능도 나타내어 주십니다. 또한 이 땅에서 위로하여 축복을 주실 뿐만 아니라 천국에도 상급으로 쌓이게 되니 참된 복이 되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서, 죄를 지어 사망의 길로 가는 영혼들을 위해서 애통하며 기도해 줄 수 있는 참믿음과 사랑이 있을 때 하나님의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것이요, 하나님의 위로는 말로만이 아니라 이처럼 반드시 축복으로 임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과 혀로만 애통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싸워 버리기 위해 또 영혼들을 구원하고 열매 내기 위해 애통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위로가 풍성히 임하게 됩니다. 다시는 눈물도 애통도 없는 천국에서 이 땅의 모든 영적인 애통을 말할 수 없는 영광과 상급으로 갚아 주시지요.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처럼 내 유익에 맞지 않으므로 육적으로 슬퍼하고 애통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 영혼들을 위해 영적으로 애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이 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음껏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영위할 뿐 아니라 그토록 사모하는 새예루살렘에 들어가 넘치는 하나님의 위로를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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