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트위터 페이스북 메일보내기 스크랩하기 바로가기복사 PDF
제목 창세기 강해(111)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창 7:11-12 날짜 2014.06.1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 시간에 11절 전반절을 말씀드렸습니다.
노아 시대 대홍수 심판은 백보좌 대심판의 예표라 할 수 있지요. 다만 심판의 도구가 하나는 물이요, 하나는 불입니다. 이에 대해 벧후 3:6,7에는 “이로 말미암아 그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대홍수 심판 시 의인 노아의 가족 외에는 모두 물의 넘침으로 멸망을 받았지요. 백보좌 대심판 때에는 주님을 믿지 않아 의롭다 인정받지 못한 이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떨어지게 되지요. 따라서 대홍수 심판에 대한 말씀을 들으실 때에 단순히 옛날 옛적에 있었던 일로 여겨서는 안 될 것입니다. 앞으로 있을 백보좌 대심판을 성도님들은 어떻게 대비해야 할 것인지 이에 대한 답을 찾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이제 11절 후반절을 보시면 “그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렸다” 했습니다. 대홍수 심판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때 아버지 하나님의 눈에서는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그 눈물방울은 아버지의 옷자락에 ‘기대함’이란 글자로 새겨졌지요. 거기에는 다시 기대하며 기다리겠고, 반드시 이룰 것이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무엇을 기대하며 기다리셨을까요? 바로 노아로부터 다시 시작할 인간 경작을 통해 ‘참 자녀들’이 나올 것을 기대하셨습니다. 또한 반드시 이루시겠다는 의지를 눈물로써 옷자락에 새기신 것입니다.

본문에는 지구를 완전히 뒤덮은 홍수가 어떻게 일어났는지가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렸다”고 하셨지요.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을 지구 안에서 일어난 일로 해석합니다. 곧 바다의 깊은 곳에서 샘이 터지고 하늘에서 엄청 많은 비가 내렸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당시 홍수로 지구의 가장 높은 산까지도 완전히 물에 잠겼습니다. 이는 바다의 샘이 터지고 하늘에서 비가 내린다고 해서 가능한 일일까요? 그렇지 않음을 상식적으로 알 수 있지요.

만일 바다의 샘이 터지고 비가 많이 내려서 대홍수가 됐다고 한다면 홍수가 그친 후에는 그 많은 물이 어디로 사라졌을까요? 사람의 지식과 상식으로는 시원하게 답할 수가 없지요. 따라서 이 말씀의 해답을 이 육의 세계에서 찾으려 해서는 안 됩니다. 바로 영의 세계인 에덴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지요.

여기서 잠깐 예전 말씀을 복습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첫째 하늘에 속했고, 에덴동산은 둘째 하늘, 천국은 셋째 하늘에 속해 있지요.

둘째 하늘은 둘로 나눠져 있다 했습니다. 바로 ‘에덴’이라는 빛의 공간과 악한 영들의 영역인 어둠의 공간이지요. 첫 사람 아담과 하와가 살았던 ‘에덴동산’은 빛의 공간인 ‘에덴’ 안에 특별하게 창설된 영역입니다.

‘동산’이라 해서 그 영역이 좁은 것이 아니라 지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엄청 넓지요. 에덴동산도 이처럼 드넓은데 에덴 전체의 넓이는 얼마나 넓겠는지요. 우리 눈에 보이는 우주가 끝없이 넓은 것처럼 둘째 하늘의 에덴도 무한히 넓은 공간입니다.

이렇게 드넓은 에덴에는 강(江)의 기원도 있습니다. 창 2:10에 “강이 에덴에서 발원하여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라고 말씀한 대로입니다. 바로 에덴에 있는 강의 물들이 노아의 대홍수 심판 때에 동원되었습니다. 본문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졌다’는 말씀은 에덴에 있던 샘들이 터졌음을 뜻하지요.
또한 ‘하늘의 창들이 열렸다’는 말씀은 둘째 하늘과 첫째 하늘 사이의 통로가 열렸다는 의미입니다. 그 결과 둘째 하늘 에덴에 있던 물들이 이 통로를 통해 첫째 하늘에 있는 이 땅으로 내려오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창들’이라 했지요. ‘창’이 단수가 아니라 복수로 표현돼 있습니다. 이는 둘째 하늘과 첫째 하늘을 연결하는 통로가 한 곳만 열린 것이 아니라 지구 곳곳에 있는 통로들이 함께 열렸다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그래서 일시에 엄청난 양의 물이 둘째 하늘로부터 이 땅에 쏟아져 내렸지요.

성경에는 이처럼 둘째 하늘에 있는 것이 첫째 하늘로 내려온 기록이 종종 나옵니다. 시 78:23-24에 보면 “그러나 저가 오히려 위의 궁창을 명하시며 하늘 문을 여시고 저희에게 만나를 비같이 내려 먹이시며 하늘 양식으로 주셨나니” 했습니다. 바로 출애굽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먹었던 ‘만나’도 둘째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었지요.

또한 엘리야 선지자가 바알 및 아세라 선지자 850인과 대결할 때에 하늘에서 끌어내린 불도 둘째 하늘에서 내려온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많은 기사를 통해 둘째 하늘이 있음을 눈으로 확인하셨지요. 곧 구름이 휘말리듯이 감기면서 사라지는 장면을 대부분의 성도님들이 보셨습니다. 이처럼 둘째 하늘에 속한 것이 첫째 하늘에 나타나기 위해서는 하늘 문이 열려야 합니다.

이렇게 하늘 문이 열릴 때는 ‘네 생물’이 관여하게 됩니다. 둘째 하늘에 있는 것이 첫째 하늘로 내려오려면 서로 차원이 다른 공간의 흐름을 타야 하지요. 바로 이렇게 할 수 있는 권한이 네 생물에게 있습니다.

첫째 하늘과 둘째 하늘의 개념을 건물의 위층과 아래층 정도로 생각해서는 안 되지요. 건물의 위층과 아래층이 통하려면 위층 바닥과 아래층 천정에 구멍을 뚫으면 됩니다. 그러나 둘째 하늘과 첫째 하늘은 서로 차원이 다른 공간입니다.

바로 이렇게 서로 차원이 다른 공간인 첫째 하늘과 둘째 하늘 사이의 영계의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는 권한이 네 생물 중의 한 생물에게 있습니다. 바로 독수리 생물이지요. 대홍수 심판을 위해 에덴의 깊은 샘들로부터 흘러나온 물이 지구로 내려올 때도 독수리 생물이 주된 역할을 했습니다.

본문 12절에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구를 물로 덮기 위해 사십 주야 동안 비를 내리셨지요. 하나님께서는 단 하루만에도 지구가 물에 잠기게 하실 수 있는데 왜 사십 일 동안 비를 내리게 하셨을까요? 바로 “40”이라는 숫자에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구를 창조하시기 전 영계에서 루시퍼에 의한 커다란 반란 사건이 있었지요. 하나님께서 가장 많은 사랑을 주신 천사장 루시퍼가 천사 3분의 1과 함께 하나님을 대적하는 반란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이에 대해 벧후 2:4에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했지요. 유 1:6에도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했습니다. 이처럼 루시퍼의 반란은 이내 평정이 됐습니다.

그러나 이 일로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깊은 마음의 고통을 당하셔야 했지요. 심히도 공허함을 느끼셨습니다. 이때 영계는 잠시나마 혼돈의 상태가 됐습니다. 이 상황이 창 1:2에서는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라고 표현돼 있지요. 영계에서의 이 혼돈한 시간을 육의 세계의 시간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40’이라는 숫자입니다.

그렇다 하여 루시퍼의 반란 이후 딱 40일 동안 영계가 혼돈했고 하나님의 마음이 아프셨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영계에서의 그 시간에 해당하는 수를 이 땅에서의 수의 개념으로 표현했을 때 그것이 ‘40’이 된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의미가 담긴 ‘40’이라는 수에 맞추어 대홍수 심판 때에도 40일 동안 비를 내리셨던 것입니다.

따라서 대홍수 심판 시 40일 동안 비가 내린 데에는 마치 루시퍼의 반란 때와 같은 하나님의 마음의 고통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참 자녀를 얻고자 시작하신 경작이었는데 이처럼 모든 사람을 물로 심판하실 때에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셨겠는지요. 안타깝고 애타시며, 마음 아프신 심정이 40일 동안 비를 내리신 역사에 그대로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도 공생애를 시작할 때에 40일 동안 금식을 하셨지요. 모세 선지자가 계명을 받을 때에도 40일 동안 금식을 했습니다.

저도 1981년 신학교 3학년 겨울 방학 동안 40일 금식 기도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당시 60년 만에 혹독한 추위가 찾아왔지만 매일 세 차례 정한 시간에 기도 굴에 가서 무릎을 꿇고 부르짖어 기도했지요. 그 전까지는 제가 금식 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늘 붙들어 주셨는데, 이번에는 전혀 붙들어 주시지 않았습니다.

“40일 금식 기간 동안 내가 외면한 것이 아니라 일부러 연단한 것이니라. 내가 붙들어 주어 편안하게 금식을 마쳤을 때와 붙들어 주지 않은 상태에서 너의 능력과 인내로 금식을 마쳤을 때를 비교해 보면 그 능력이 몇 갑절 다르기 때문이라.” 내 힘과 정신력으로 금식을 마쳤을 때에는 정신력과 인내력이 강해지고 어떤 시험이나 환난이 와도 능히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기 때문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저는 지난 4년 동안도 이와 비슷한 영의 훈련을 받았습니다. 저는 아버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그 뜻에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 가장 쉬웠고 그렇게 하는 것이 제일 행복했습니다.

이런 저에게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이제는 아버지를 의지하지 말고 스스로 해 보라고 하셨지요. 그런 이후 마치 하나님께서 저를 철저히 외면하신 것 같은 너무나 막막하고 답답한 상황이 펼쳐졌습니다. 그렇게 4년의 시간이 지난 것입니다.

이 기간 동안 저는 너무나 고통스런 나날을 보냈지요. 그런데 그것이 공의가 되어 성도님들은 놀라운 영적인 성장을 하게 됐습니다. 성도님들이 10%만 채워도 제가 이룬 90%의 공의가 적용되어 믿음의 반석으로, 영으로 수많은 성도가 나온 것입니다. 또한 이 제단을 향하신 마지막 때의 섭리를 이룰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섭리가 이뤄질 때는 그 기간이나 날짜의 수도 아무 의미 없는 수가 아님을 알 수 있지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40일 동안 비를 내리는 방법을 택하신 데에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당시 지구에 있던 홍수 이전의 흔적들을 최대한 보전케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하루 또는 단 며칠 동안 일시에 엄청난 양의 물을 쏟아 부으셨다면 어떤 현상이 나타나겠는지요. 우리나라에서 여름철 집중호우만 내려도 여기저기 물난리로 피해가 발생합니다. 그런데 그보다 훨씬 강력한 집중호우라면 얼마나 많은 것이 훼손되겠는지요. 당시 지구에 남아 있던 문명의 흔적들은 완전히 파괴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노아의 홍수는 마치 컵에 물이 천천히 채워지는 것처럼 40일 동안의 비로 인해 지표면으로부터 물이 차곡차곡 쌓여갔습니다. 그래서 홍수 이전의 문명의 흔적들이 그나마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이지요.

대표적인 예로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들 수 있습니다. 이 밖에도 고대 문명의 흔적들이 지금도 지구 곳곳에 남아 있지요.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후손들이 에덴동산과 영의 세계에 대한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도록 허락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노아의 홍수에는 참으로 많은 의미들이 담겨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에는 대홍수 심판이 시작되는 장면을 살펴보았습니다. 대홍수 심판을 이루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은 심히 아프셨지요.
겔 18:23에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어찌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그런데 노아 시대의 죄악은 공의의 기준에 의해 심판할 수밖에 없는 한계에 이르렀지요. 그래서 아버지 하나님은 눈물을 흘리시며 심판을 단행하셨지만 새로운 기대를 하셨다고 했습니다. 바로 노아로부터 다시 시작할 인간 경작을 통해 ‘참 자녀들’이 나올 것을 기대하셨지요.

성도님들은 아버지의 이런 오랜 기다림을 얼마나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으실까요? 진정으로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참 자녀를 얻기까지 “천 년을 하루같이 하루를 천 년같이” 변함없이 기다리고 기다리시는 아버지의 마음, 성도 여러분이 이러한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신속히 영으로 온 영으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아버지 하나님께 참 기쁨을 드리는 참 자녀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랫글 : 요한일서 강해(45)
윗글 : 요한일서 강해(41)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