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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한계시록 강해(85)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계20:11-21:1 날짜 2008.12.19
지난 시간에는 본문에 나타난 백보좌 대심판에 대해 설명해 드렸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본문에 보충하여 백보좌 대심판의 전체적인 윤곽을 그릴 수 있도록 좀 더 상세한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1. 백보좌 대심판의 전체적인 모습

삼위일체 하나님의 보좌를 중심으로 심판을 돕는 배심원들이 있습니다. 보좌 앞에는 책들과 생명책이 펴져 있고, 넓은 유리바다가 보입니다. 책들에는 심판받을 모든 영혼의 행적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고, 생명책에는 구원받을 성도들의 이름이 있습니다.
원래 유리바다는 생명수 강물로 채워진 천국의 바다입니다. 그 안에 아름다운 고기들이 노니는 모습까지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평소에는 맑고 투명합니다. 그런데 심판 때에는 이 바다가 첫째 하늘의 보좌 앞에 나타나 지엄한 심판의 도구로 사용됩니다. 모든 사람의 행적을 뚜렷이 비춰 보이는 스크린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보좌 앞에는 아담의 범죄 이후로 이 땅에서 경작된 무수한 영혼이 심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5장 33절에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양은 구원받은 의인을 비유한 것이고, 염소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을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영혼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구원받지 못한 영혼은 하나님의 보좌 좌편에 위치함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지난 시간에 설명한 것처럼, 심판받는 모든 영혼이 첫째 하늘의 보좌 앞으로 직접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받은 영혼들은 대부분 첫째 하늘에 있지만, 윗음부나 아랫음부, 둘째 하늘 등에 있던 영혼은 자신이 있던 공간에 그대로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여러 공간을 하나로 열어 주시기 때문에 모두가 동일한 공간에 있는 것처럼 느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의 공간이 열리는 순간, 아랫음부에 있던 영혼도 첫째 하늘의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와 선 것처럼 그 위엄과 권세를 느끼게 됩니다. 에덴동산에 있는 영혼이나 이미 지옥에서 형벌을 받는 몇몇 영혼도 이처럼 공간이 열린 상태에서 심판을 목도할 수 있습니다. 심판받기 위해 보좌 앞에 나온 모든 영혼은, 각자에게 해당하는 육을 입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영혼은 부활체를 입은 상태이고, 구원받지 못한 영혼도 심판을 받기 위해 나름대로의 육을 입습니다.
참고로, 공간에 따라 다른 육을 입는 것을 간단히 정리해 보겠습니다. 사람이 이 땅에서 경작될 때에는 지금 저와 여러분이 입고 있는 것과 같은 첫째 하늘의 몸을 입습니다. 이 땅에서 수명이 다하면, 마치 옷을 벗는 것처럼 몸에서 영혼만 빠져 나갑니다. 그래서 윗음부나 낙원의 대기장소에 있을 때에는 육이 없는 영혼, 곧 영체로만 있다가 혼인잔치 때 부활체를 입습니다. 이 부활체는 둘째 하늘의 공간에 적합하지만, 천년왕국 때에는 첫째 하늘에서도 부활체로 지냅니다. 부활체는 영의 몸이기는 하지만, 아직 온전한 영체는 아니기 때문에 육의 사람들이 보거나 만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심판 후에, 마침내 천국에 적합한 온전한 영체를 입습니다. 이 온전한 영체는 상급을 입은 몸으로서, 각 사람마다 그 빛과 향과 영광이 다릅니다.
다음으로, 구원받지 못한 사람도 육의 수명이 다하여 죽은 후 아랫음부에 갇힐 때에는 육이 없는 영체의 상태로 머물게 됩니다. 그리고 심판이 끝나 지옥에 갈 때에는 지옥의 공간에 맞는 육을 입습니다. 이 육은 영원히 썩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습니다. 또한 불과 유황으로 타는 지옥의 형벌을 고스란히 느끼며 고통을 받습니다.

2. 백보좌 대심판의 진행 과정

1) 재판장이신 삼위일체 하나님
보좌에 앉으신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도 형상을 입은 상태로 심판에 임하십니다. 그런데 대심판은 성부 하나님께서 홀로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재판장은 성부 하나님이지만, 주님과 성령님에게도 심판의 권세가 있으십니다.
요한복음 5장 27절에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했는데, 바로 주님께 심판의 권세가 있음을 알려 주시는 말씀입니다. 또 요한복음 16장 8절에 "그가(곧 성령이)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했습니다. 성령님께도 심판의 권세를 주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인생들이 겪는 모든 것을 체험하셨고, 성령님께서도 사람들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아십니다. 그래서 주님과 성령님께서는 큰 자비와 긍휼로써 인간을 대변하시며, 그들의 입장에서 성부 하나님의 판결이 합당함을 보장하시는 것입니다.
먼저 성부 하나님께서 어떤 한 영혼에 대해 성령의 9가지 열매와 팔복, 사랑장 등의 기준에 비춰 판결을 내리십니다. 그가 영원히 거할 처소가 어디이며, 상급이 얼마나 되는지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과 성령님께서 인간 경작을 받으신 입장에서 이 판결이 옳음을 다시 한 번 보장합니다.

2) 심판을 보좌하는 네 분의 선지자
그런데 이것으로 심판이 끝나는 것이 아니고, 확증하는 단계가 더 있습니다. 천국 백성 중에서 가장 높은 서열인 엘리야, 에녹, 아브라함, 모세 선지자가 대심판을 보좌하여 심판을 돕는 것입니다. 이미 천국 설교에서 설명한 대로, 이 네 분은 그 거룩함과 온전함을 이미 인정받아 대심판이 있기 전에 처소와 상급이 정해지고 온전한 영체를 입었기 때문에 최후의 대심판에서 제외됩니다. 이 네 분의 선지자 중에서 엘리야와 에녹은 많은 발언을 하지는 않지만 인간 경작 최고의 열매라는 자체만으로도 심판의 기준이 됩니다. 또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믿음의 측면에서, 모세는 율법의 측면에서 심판을 보좌합니다.

3) 배심원이 되는 24장로
이에 더하여 배심을 담당하는 24장로가 있습니다. 24장로가 어떤 분인지는 요한계시록 4장에서 이미 상세하게 설명을 했습니다. 다시 한 번 간단히 말하면, 24장로는 새 예루살렘에 들어간 사람 중에서도 어떤 한 분야가 더욱 탁월하여 심판의 기준이 될 수 있는 분들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 충성, 선, 진실, 절개 등 각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보석 같은 마음을 이룬 사람입니다.
이분들은 배심원의 자리에 서기 전에, 대심판의 1순위로 가장 먼저 심판을 받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심판대에 서는 분은 24장로 중에 서열이 가장 높은 사도 바울입니다. 그가 심판대에 서면, 그 일생이 모든 영혼 앞에 낱낱이 선포됩니다. 얼마나 뜨겁게 주님을 사랑했는지, 수많은 연단 속에서도 어떻게 승리했는지, 그 믿음과 충성과 모든 공적이 드러납니다. 그러면 삼위일체 하나님과 네 분의 선지자가 모든 내용이 사실임을 인정하시고, 사도 바울에게 합당한 영광과 상급을 줍니다. 그 뒤를 이어 24장로가 서열대로 심판대에 서고, 각자의 상급을 받습니다.
참고로, 24장로 외에도 본격적인 백보좌 대심판이 이뤄지기 전에 먼저 상급 심판을 받는 분들이 있습니다. 여인 중에 가장 서열이 높은 막달라 마리아와 동정녀 마리아입니다. 이분들이 심판대에 서면, 그 선함과 주님을 향한 사랑이 얼마나 온전하고 진실했는지가 드러납니다. 이들이 심판대에 서서 증언하는 자체가 인간 경작을 이루신 하나님의 기쁨이 되므로, 이들은 본래 받을 상급 위에 더한 상급을 받습니다.
이 땅에서는 배심원의 다수결에 의해 피고의 유죄 여부가 결정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백보좌 대심판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면 24장로는 어떻게 배심원 역할을 하는 것일까요? 24장로는 심판의 측정 기준이 되어, 재판장이신 하나님의 판결이 온전함을 보장하는 역할을 합니다. 예를 들어 뜨거운 중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여 충성한 사람이 심판대 앞에 서면, 사도 바울에 비추어 심판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충성이 얼마나 값지고 존귀한 것인지 측정한 결과에 따라 상급을 줍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믿다가 핍박 때문에 주님을 떠나고 세상 사람과 똑같이 살았던 사람이 있다면, "나는 너무 심한 핍박 때문에 믿음을 지킬 수 없었습니다." 하면서 어떻게든 자기의 입장을 옹호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십자가를 거꾸로 지기까지 했던 베드로나, 사자 굴에 들어가더라도 타협하지 않은 다니엘과 같은 분이 나섭니다. 그분들이 자신이 겪은 상황과 그것을 이겨 낸 신앙을 말할 때, 이 사람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주님을 배신한 것에 대해 어떤 변명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백보좌 대심판은 재판장이신 삼위일체 하나님과 네 분의 선지자, 그리고 24장로로 완벽한 구성을 이룹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혼자 이루신다 해도 그 심판은 온전하고 정확합니다. 그러나 많은 분으로 확증하게 함으로써, 영혼을 심판하는 데에 더욱 더 신중을 기하는 것입니다.

3. 대심판의 집행과 마무리

이제 본격적인 대심판이 시작되면, 먼저 구원받지 못한 영혼이 심판을 받습니다. 죄인들은 감히 거룩하신 하나님의 앞에 나와 대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형벌받던 지옥의 대기장소인 아랫음부에 그대로 머물면서 심판을 받는데, 그중에서도 죄가 무거운 사람부터 심판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형벌이 정해지면 불못 혹은 유황못으로 갑니다.
다음으로 구원받은 영혼의 심판이 시작됩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은 영혼들에 대한 심판은 벌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천국의 처소와 상급을 정하기 위한 상급 심판입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2절에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하신 말씀대로 이루시는 것입니다. 이 상급 심판은 평안한 분위기 속에 진행됩니다. 구원받은 영혼의 경우, 심판은 믿음의 분량이 큰 사람과 상급이 큰 사람부터 순서가 진행됩니다. 이 모든 심판이 끝나면, 모두 한꺼번에 저마다 받은 천국의 처소로 들어갑니다.

4. 새 하늘과 새 땅

사도 요한은 참혹한 7년 환란을 보았고, 경작을 마무리하는 대심판의 장면도 목도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천국을 보게 됩니다. 본문 요한계시록 21장 1절에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했습니다. 여기서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는 말씀은 이제 첫째 하늘의 공간이 더 이상 필요 없다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지난 시간에도 설명한 것처럼, 첫째 하늘은 인간 경작을 위해 만든 공간이므로 경작을 마친 시점에서는 닫힙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공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처럼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운행되거나 생명이 번성하는 일은 없다는 말입니다. 또한 셋째 하늘의 사람들이 첫째 하늘로 오가는 일도 없습니다.

1) 백보좌 대심판 이후의 공간들
대심판이 끝나고 나면, 모든 영혼은 각자의 처소가 정해지고 영원히 그 곳에서 있게 됩니다. 여기서 대심판 후에 각각의 공간을 간략하게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먼저, 셋째 하늘에는 천국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구원받은 영혼이 들어갑니다. 다만, 구원받은 영혼 중에서도 모태에서 죽은 영혼은 셋째 하늘의 천국이 아닌 윗음부에서 영원히 살게 됩니다.
다음으로, 둘째 하늘에는 에덴동산이 있습니다. 경작받지 않은 아담의 후손이 이전처럼 영원히 살아갑니다. 원래 둘째 하늘에는 빛의 영역과 함께 악한 영들이 권세 잡았던 어둠의 영역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심판 후에는 악한 영들이 무저갱에 갇히므로, 둘째 하늘에는 어둠의 영역이 사라지고 빛의 영역만이 남습니다.
마지막으로, 첫째 하늘은 앞에서 말한 대로 공간의 문이 닫히므로 영원히 사용하지 않는 공간으로 남겨집니다.
그런데 첫째, 둘째, 셋째 하늘과 달리 지옥의 공간도 있습니다. 경작된 사람 중에서 구원받지 못한 영혼은 지옥의 불과 유황못에 영원히 있게 됩니다. 다만, 구원받지 못한 태아나 어린아이의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아랫음부에 머뭅니다. 대심판 후 아랫음부에 대해서는 앞으로 지옥 설교에서 다시 설명하겠습니다. 지옥의 가장 깊은 무저갱에는 악한 영들이 영원히 갇혀 있습니다.
이렇게 한번 처소가 정해지고 나면, 서로 다른 차원의 공간에서는 교류하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셋째 하늘, 즉 천국의 성도가 첫째 하늘로 가는 일도 없고, 둘째 하늘의 사람이 셋째 하늘의 천국에 가는 일도 거의 없습니다. 물론 예외적인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특별한 경우 하나님께서 셋째 하늘의 성도에게 둘째 하늘의 사람을 보여주고자 그들을 부르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둘째 하늘에서 머리급에 속하는 몇몇이 올 수 있지만, 각각의 공간 차이가 매우 크기 때문에 그런 일이 결코 자주 있는 것은 아닙니다.

2) 대심판 이후 윗음부와 에덴동산
먼저, 에덴동산에서는 첫 사람 아담 이후로 계속해서 평화로운 삶을 이어왔습니다. 아담이 죄를 범하여 쫓겨나고 첫째 하늘에서 인간 경작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에덴동산에 남은 아담의 후손은 예전과 다름없이 살아왔습니다. 그들에게는 죄가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옷을 입어서 수치를 가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옷을 입지 않고 산다 해서 그들의 삶이 원시적인 것은 아닙니다. 창세기 강해에서 설명한 것처럼, 오히려 이 땅의 사람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달한 문명을 누리고 삽니다. 뛰어난 지혜로 만들어 낸 문명과 아름다운 자연을 마음껏 누리며 서로 사랑하여 계속 낳고 낳으며 번성해 왔습니다. 그들은 대심판 이후에도 별다른 변화없이 그런 삶을 그대로 살아갑니다.
다음으로, 윗음부에서의 삶은 천국이나 에덴동산에 비해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많이 받습니다. 천국의 성도들, 특히 새 예루살렘의 성도들은 천국의 삶을 마음껏 즐기고 누립니다. 낙원부터 새 예루살렘까지 천국 곳곳을 원하는 대로 돌아다닐 수 있고, 공의의 법 안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연회도 베풀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초청하여 즐길 수도 있습니다. 사모하던 선지자들을 찾아가 대화도 할 수 있고, 행복과 안식과 영화를 마음껏 누리며 삽니다. 하지만 낮은 처소로 갈수록 그 자유에 점점 제한이 많아집니다. 예를 들어, 2천층에 있는 사람들은 낙원에서 2천층까지는 자유롭게 다닐 수 있지만, 3천층이나 새 예루살렘에는 허락을 받아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 낙원의 사람들은 낙원의 공간 안에서 원하는 것을 누릴 수 있습니다. 에덴동산, 곧 둘째 하늘의 사람들도 나름대로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삶을 누립니다. 자고 싶을 때 자고, 쉬고 싶을 때 쉬며, 자녀를 낳고자 하면 낳을 수 있고, 원치 않으면 낳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런 에덴동산이나 천국에 비해, 윗음부는 상대적으로 가장 제약이 많은 공간입니다.
원래 윗음부에 있는 영혼은 모태에서 태아 상태로 죽은 영혼이라 했습니다. 이들은 죽었을 때의 형태대로 윗음부에 머물다가, 성도들이 부활할 때 육을 입습니다. 하지만 성도들의 부활체와는 달리, 태아의 상태로부터 순간에 성장하는 몸이며 적당한 나이에 이르면 더 이상 늙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육이 성장하여 성인의 형태가 되었다 해도, 정신적으로는 태아로 있을 때와 다름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육이 성장하면, 마치 백지와 같은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듯 영의 지식을 배워 나가야 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 배우고, 그동안의 역사와 인간 경작에 대한 것, 천국이나 여러 공간에 대한 것 등을 하나하나 배우는데, 배울 때에는 다 같이 배우고 쉴 때에는 다 같이 쉬면서 단체적으로 움직입니다. 셋째 하늘에 있는 영혼들처럼 이곳저곳을 여행하거나 개별적인 자유 시간을 마음껏 가질 수가 없고, 정해진 시간의 흐름대로 사는 것입니다.
비유를 들어, 대학생은 수강 신청을 할 때 자신이 원하는 대로 시간표를 짭니다. 수업을 듣는 것도, 듣지 않는 것도 비교적 자유롭게 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초등학생은 대체로 학교에서 정해준 시간표가 있고, 정해진 수업은 반드시 들어야 합니다. 윗음부에서도 이와 같습니다. 정해진 일과에 따라 움직이며, 천국과 달리 자유롭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삶이 불행하거나 힘든 것은 아닙니다. 그들 나름대로 안락하고 평안한 삶을 누리지만, 더 많은 것을 누릴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다음 시간부터는 본격적으로 천국에 대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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