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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공간과 차원(4)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사43:2 날짜 2008.12.21
지난 시간에는 셋째 하늘의 특성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셋째 하늘과 같은 3차원의 공간이 첫째 하늘에 입혀져서 발생한 일들의 예를 말씀드렸습니다. 이번 시간에도 성경에 나타난 이러한 사례를 말씀드리면서, 우리 교회에 나타난 사례들도 함께 말씀드리겠습니다.

1. 영의 공간에서 지킴 받은 사례들

이사야 43장 2절에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했습니다. 이 말씀처럼 성경에는 정말 물 가운데서, 불 가운데서도 보호를 받은 사례들이 나옵니다. 그런데 하나님 말씀은 영원히 변함이 없으므로 그러한 성경의 사례를 통해 하나님의 공의를 깨달으면, 우리도 얼마든지 그러한 일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1) 사자굴에 던져진 다니엘
마음을 온전히 영으로 일군 온 영의 사람은 온전한 3차원의 존재입니다. 따라서 2차원인 원수 마귀 사단이 송사할 수 없으며, 근접하지도 못합니다. 그런데 간혹 원수 마귀 사단이 악한 육의 사람들을 사주하여 죄 없는 영의 사람에게 해를 가하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 반드시 반전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어둠이 빛을 물리칠 수 없듯이 저차원이 고차원을 다스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예로는 다니엘을 들 수 있습니다.
다니엘이 바사 제국의 총리가 됐을 때, 시기하는 무리의 궤계로 사자굴에 던져진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 6장 22절에 보면, 다니엘은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치 아니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의 앞에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고백합니다.
여기서 "천사가 사자들의 입을 봉했다"는 것은 3차원의 공간을 입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천국에서는 사자 같은 맹수류도 전혀 포악하지 않고 아주 온순한데, 이 땅의 사자들도 3차원의 공간을 입으니 온순해진 것입니다. 그런데 3차원의 공간이 벗겨지니, 사자의 포악성이 다시 그대로 드러납니다. 다니엘 6장 24절에 "왕이 명을 내려 다니엘을 참소한 사람들을 끌어오게 하고 그들을 그 처자들과 함께 사자 굴에 던져 넣게 하였더니 그들이 굴 밑에 닿기 전에 사자가 곧 그들을 움켜서 그 뼈까지도 부숴뜨렸더라" 한 것입니다.
다니엘이 이처럼 지킴 받을 수 있는 까닭은 죄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악한 사람들이 고소할 틈을 얻고자 다니엘이 맡은 국사를 샅샅이 뒤져보아도 틈과 허물이 없었습니다. 또 다니엘은 생명의 위협 앞에서도 변함없이 기도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3차원의 공의에 맞았기 때문에 사자굴에 3차원의 공간이 입혀졌고, 다니엘은 온전히 지킴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전에 성도님들이 이런 간증을 하셨습니다. 전도나 심방을 다니다 보면 아주 무서운 개가 지키는 집도 방문하게 되는데, 무섭게 짖어대는 개에게 제 사진을 보여 주면 더 이상 짖지 않고 꼬리를 내리며 뒤로 물러선다는 것입니다. 영의 공간 안에서는 그런 일도 가능함을 알아 필요에 따라 활용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단, 믿음 없이 시험 삼아 하는 것은 안 됩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공의에 맞을 때만 영의 공간이 입혀지기 때문입니다.

2) 다니엘의 세 친구
다니엘의 세 친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단지 우상에게 절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져졌습니다. 풀무불을 평소보다 일곱 배나 뜨겁게 했기 때문에, 세 사람을 풀무불에 던져 넣기 위해 불 가까이 갔던 병사들이 타 죽을 정도였습니다. 세 사람이 풀무불에 던져지면, 그 즉시 불에 타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입니다.
그런데 다니엘 3장 24-25절에 "느부갓네살 왕이 놀라 급히 일어나서 모사들에게 물어 가로되 우리가 결박하여 불 가운데 던진 자는 세 사람이 아니었느냐 그들이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왕이여 옳소이다 왕이 또 말하여 가로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했습니다. 이후에 불 가운데서 나온 세 사람을 보니, "불이 능히 그 몸을 해하지 못하였고 머리털도 그슬리지 아니하였고 고의 빛도 변하지 아니하였고 불 탄 냄새도 없었더라" 했습니다.
이처럼 다니엘의 세 친구는 극렬히 타는 불속에서도 온전히 지킴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세 사람에게 영의 공간이 입혀졌기 때문입니다. 영의 공간이 입혀졌음을 알 수 있는 단서는 신들의 아들과 같은 분이 함께 계셨다는 말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신은 유일신인 하나님을 뜻하지만, 이방신들을 섬기는 느부갓네살 왕의 입장에서 신들이라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면 이때 세 사람과 함께 불속에 계시던 신들의 아들은 누구일까요? 바로 구약시대에는 성신으로 사역하시던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친히 임하셔서 세 사람과 함께하시며 그들을 지켜 주신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면, 그곳은 4차원의 공간이 입혀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바로 세 사람이 결박한 채 불에 던져졌는데, 불속에서는 결박이 풀린 상태였다는 점입니다. 이는 세 사람을 결박한 끈은 세 사람과는 달리 그대로 육의 공간에 있음으로써 풀무불에 타버린 것을 나타냅니다. 이 말씀을 들으시는 성도님들은 우리 교회에서 자주 들으신 어떤 간증이 떠오를 것입니다. 교통사고로 차는 폐차될 정도로 망가졌어도, 차에 탄 성도님들은 전혀 다치지 않은 경우가 바로 그것입니다. 온전한 주일 성수와 십일조를 드리고 현저한 육체의 일을 행치 않는 성도라면, 이처럼 위험한 교통사고를 당해도 하나님께서 온전히 지켜 주십니다. 그런데 교통사고 자체를 막아 주시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대부분 운전자가 과속하거나, 신호를 위반하거나, 졸음운전을 하는 등 공의를 어긴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1997년도의 대구만민교회 승합차의 교통사고가 그런 경우입니다. 12인승 승합차에 17명이 탑승했고, 심하게 과속을 했습니다. 제가 인도하는 마산만민교회의 창립기념예배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그랬던 것입니다. 그런데 과속으로 달리던 승합차의 오른쪽 뒤 타이어가 터지면서 차량이 전복되었습니다. 타이어가 터지면서 중심을 잃은 차량이 전복되면서 고속도로 중앙 분리대에 부딪친 후 세 바퀴를 구르는 대형사고가 일어난 것입니다. 이런 교통사고의 경우, 대부분이 중상을 입거나 사망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탑승객 17명 중 딱 한 명만 부상을 입었고, 나머지 16명은 모두 정상이었습니다. 그중에는 임신 3개월인 성도도 있었는데, 이분은 차량 밖으로 몸이 튕겨져 나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자기를 받쳐주는 느낌이 들었고, 큰 충격 없이 가볍게 떨어졌다고 간증하셨습니다. 다음날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았는데, 태아에게도 아무 이상이 없음을 확인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부상당한 한 분도 제가 예배 후 기도해 줬을 때, 바로 치료되어 정상이 되었습니다. 물론, 사고 난 차량은 폐차시켰습니다.
얼마 전에도 미국에서 그런 간증이 왔던 것을 아실 것입니다. 지교회 목사님의 사모님과 아들이 탄 차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차는 심하게 망가졌는데, 두 분은 아무 데도 다치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이나 세 친구는 하나님께서 보실 때 합당한 공의를 이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보장하는 가운데 그 순간 영의 공간이 입혀진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성도들은 아직 온 영을 이룬 것이 아닌데도 지킴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2. 영의 공간 안에서 지킴을 받는 방법

1) 아브라함의 공간에서 구원받은 롯의 가족
성경에도 스스로 합당한 자격을 갖추지 못했는데도 영의 공간 안에서 지킴 받은 경우가 나옵니다. 예를 들면, 멸망하는 소돔성에서 구원받은 롯의 가족이 그런 경우입니다. 창세기 19장에 보면, 소돔성에 멸망이 임박했는데도 롯이 지체하자 천사들이 친히 롯과 가족의 손을 잡고 성 밖으로 이끌어내 구원받게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롯이 이처럼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이유는 창세기 19장 29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이 들의 성들을 멸하실 때 곧 롯의 거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어 보내셨더라" 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벗인 아브라함을 위해 그의 조카인 롯과 가족에게 영의 공간을 입히셨음을 뜻합니다. 이때 입혀진 영의 공간은 아브라함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만드신 아브라함의 공간입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공간 안에서도 지킴 받는 정도가 차이 납니다. 하나님께서는 롯의 가족을 구원하기 위해 친히 천사들을 보내 멸망이 임박함을 알려 주셨습니다. 롯은 이 사실을 가족에게 알리고, 자기 딸들과 정혼한 사위들에게도 알렸습니다. 그런데 사위들은 롯의 말을 농담으로 여기고 믿지 않았습니다. 구원의 기회를 놓친 것입니다. 또한 롯의 아내는 이미 심판이 임한 것을 알면서도 세상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뒤를 돌아보았다가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온 영의 사람을 통해 영의 공간이 입혀진다 해도 당사자가 최소한의 공의를 지켜야만 그 안에서 보호받을 수 있음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의 경우, 그 최소한의 공의는 바로 온전한 주일 성수와 십일조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의 분량에 따른 공의를 지켜야 합니다. 믿음의 3단계라면 사망에 이르는 현저한 육체의 일은 행치 않아야 하고, 믿음의 1, 2단계라도 성령 훼방이나 성령 모독 같은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지어서는 안 됩니다. 성도 편에서 그러한 최소한의 공의를 지킬 때, 어떤 큰 사고를 만나도 목자의 공간 안에서 지킴을 받는 것입니다. 참고가 되실 수 있도록, 우리 성도님들이 영의 공간 안에서 지킴 받은 몇 가지 사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현재 경찰 선교회에서 활동하는 전중익 장로님의 초신자 때 간증입니다. 1998년 12월 23일, 이분은 경찰특공대원으로 조계사 시위 진압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이분이 타고 있던 고가 사다리차가 전복되면서, 다른 대원과 함께 15미터 아래로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함께 추락한 다른 대원들은 중상을 입었지만, 이분은 거의 다치지 않았습니다. 그때 이분이 간증하기를, "땅에 떨어질 때 커다란 손이 자신의 몸을 살포시 떠받쳐 주는 느낌을 받았다" 했습니다.
다음으로, 2005년 4월에 강원도 양양 지방에 산불이 크게 났을 때의 간증입니다. 이때 한 성도의 어머니가 계신 고향 마을이 산불 지역 안에 있었습니다. 뉴스에서 산불 소식을 들은 우리 성도는 급히 차를 달려 고향 마을로 가면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고 합니다. 고향 마을 어귀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시뻘건 불길이 마을을 덮쳐, 고향 집이 있는 곳까지 갈 수 없었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귀중한 물건도 제대로 챙겨 나오지 못하고 간신히 몸만 빠져나온 상황이었습니다. 다음날 새벽에 불길이 잡혔으나, 이미 마을은 잿더미로 변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신기하게도 이 성도의 고향집만은 전혀 해를 입지 않았습니다. 사실 그 집은 산과 가장 인접해서 제일 먼저 산불이 옮겨 붙을 수 있었습니다. 또 뜰에는 기름통과 LPG 가스통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집에는 불이 옮겨 붙지 않은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신기한 점은 목재 서까래에 불이 붙은 흔적이 있었으나 더 이상 번지지 않고 꺼진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당시 영안이 열려 이 장면을 보신 분에 의하면, 큰 천사가 양 날개를 펴서 집을 감싸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주변은 모두 화재를 당했지만, 이 성도의 고향집에는 불길이 피해간 것입니다. 영의 공간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얼마 전에 마산만민교회 성도도 이와 비슷한 간증을 하셨습니다. 새롭게 시작한 사업터와 바로 맞닿은 건물에 화재가 나서 건물이 전소되었지만, 우리 성도의 사업터는 조금도 해를 입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때에도 영의 공간이 우리 성도의 사업터를 감싸고 있었기 때문에 불길이 옮겨 붙지 않은 것입니다. 이사야 43장 2절 후반에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했는데, 이제 이 말씀이 더욱 실감나실 것입니다.

2) 사도 바울의 공간에서 생명을 보존한 사람들
이사야 43장 2절 전반에 보면,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라" 했습니다. 먼저, 성경상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모세에 의해 홍해가 갈라지거나 여호수아를 통해 요단강의 흐름이 멈춘 일도 있었지만, 이 시간 살펴볼 부분은 사도행전 27장에 나타난 사도 바울의 공간에서 생명을 보존한 사람들의 예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로 압송되는 중에 타고 가던 배가 큰 풍랑을 만났습니다. 사공들은 짐과 배의 기구까지 버리면서 배가 파선하지 않도록 안간힘을 썼습니다. 그러나 여러 날 동안 해와 별이 보이지 않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어서 구원의 여망이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때에 하나님의 사자가 사도 바울에게 나타났습니다. 사도행전 27장 24절에 이르기를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말씀을 배에 함께 탄 사람들에게 전했고, 결국 이 말씀대로 되었습니다. 그가 탄 배는 큰 풍랑 속에서도 전복되거나 좌초되지 않았고, 한 사람도 바다에 빠져 죽지 않았습니다. 배가 한 섬 가까이 이르러, 전원이 섬에 상륙하게 된 것입니다. 거센 풍랑 속에서도 모두가 지킴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사도 바울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로 인해 그가 탄 배를 영의 공간으로 입히심으로써 함께한 사람들의 생명도 구해 준 것입니다.
저도 이러한 체험을 했습니다. 1986년 7월, 울릉도에서 빛과 소금 선교회 수련회를 마치고 돌아올 때의 일입니다. 당시 태풍주의보가 내려 배들은 발이 묶였고, 바다에는 파도가 거세게 몰아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일행은 그날 꼭 서울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다행히 오징어잡이 배 한 척이 있어서, 그 배를 타고 포항행 큰 배를 탈 수 있는 울릉도 도동항까지 가기로 했습니다. 배를 타고 바다 한가운데로 나와 보니, 다른 배는 한 척도 볼 수 없었습니다. 거센 파도를 타면서 헤쳐 나가는데, 거대한 파도가 계속 넘어왔습니다. 우리는 마치 파도로 된 터널을 지나는 듯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일행은 손에 손을 잡고 힘차게 찬양을 했습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맹렬한 기세로 몰아치던 파도가 뱃전을 때리지 않고 양 갈래로 갈라져 방향을 틀어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 일행은 거대한 파도가 무서운 기세로 삼킬 듯이 달려들다가 옆으로 살짝 돌아가 버리고 마는 것을 한 시간 내내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그때에는 잘 몰랐지만, 이제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영의 공간이 우리 일행을 감싸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리 큰 파도도 우리가 탄 배를 덮치지 못한 것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4차원 공간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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