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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령의 음성 주관 인도(10)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롬 8:12-16 날짜 2010.09.19
성령의 음성, 주관, 인도를 받기 위해서는 육신의 생각을 깨뜨려야 합니다. 믿음의 1단계에서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육신의 생각을 깨뜨려야 하고 믿음의 2단계에서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게 하는 육신의 생각을 깨뜨려야 합니다. 오늘은 믿음의 3단계에서 깨뜨려야 할 육신의 생각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자신의 의와 틀이 남아 있는 믿음의 3단계

믿음의 3단계에만 들어와도 신앙생활이 많이 평안해집니다. 죄와의 싸움이 줄어들기 때문이지요. 믿음의 3단계에 이르면 죄와 싸우지 않고 어느 정도 하나님 말씀을 행합니다. 적어도 행위로 범죄하지는 않기 때문에, 즉 육체의 일을 범하지 않으므로 삶 속에서 재앙을 만나는 일도 드물지요. 믿음의 3단계에 들어가면 무엇보다도 육신의 생각이 2단계에 비해 많이 깨어지고 옅어집니다. 이 또한 3단계가 2단계에 비해 평안한 이유 중 하나이지요. 믿음의 3단계에서도 반석쯤 서면 평안할 뿐 아니라 신앙생활의 참된 기쁨도 느낍니다.

믿음의 3단계쯤 되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못하게 하는 육신의 생각은 많이 깨어진 상태입니다. 그래서 적어도 행위적인 분야만큼은 “하라, 하지 말라, 지키라, 버리라” 하신 대로 행하지요. 안식일을 지키고 온전한 십일조도 합니다. 기도도 하고, 각종 예배와 모임에도 열심히 참석합니다. 거짓말, 다툼, 음행 등 육체의 일을 범하지도 않지요. 그러나 아직 육신의 생각이 다 버려진 것은 아니므로 육신의 일이 나올 때가 있습니다.

‘육신’의 영적인 의미는 ‘몸과 결합된 죄성’이라고 했지요? ‘육신의 일’은 이 육신을 낱낱이 분류해 놓은 것입니다. 미움, 시기, 질투, 거짓, 간사함, 교만, 혈기, 판단, 정죄, 간음, 욕심 이런 것 하나하나를 육신의 일이라고 하지요.

믿음의 3단계 초입의 경우 누군가가 자신이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면 순간적으로 미움이나 판단이 일기도 합니다. 마음에서 탐심이나 간음이 동할 때도 있지요. 그래도 육신의 일이 육체의 일로 나오지 않도록 육신의 생각을 물리칩니다. 육신의 생각을 계속 받아들여서 범죄하는 것이 아니지요.

믿음의 3단계 60퍼센트 이상 곧 믿음의 반석은 이런 육신의 일도 대부분 버린 상태입니다. 육신의 생각이 많이 깨어진 상태이지요. 굳이 어떤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불순종하려는 마음이 없습니다. 70퍼센트, 80퍼센트, 90퍼센트 이렇게 4단계에 가까워질수록 육신의 생각은 점점 더 흐려집니다. 육신의 생각을 통해 역사하는 사단의 음성이 점점 희미해지지요.

믿음의 3단계에서는 ‘의와 틀’에서 나오는 육신의 생각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믿음의 반석에 섰다 해도 자기 의와 틀에서 나오는 육신의 생각이 아직 남아 있지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려고 하지만 이 육신의 생각 때문에 온전히 순종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오랜 세월동안 굳혀온 생각이나 행동방식은 금방 바꾸기가 쉽지 않습니다. 특히 이런 생각 위에 진리의 말씀으로 잘못된 틀까지 만든 경우 진리에 담긴 하나님의 참 뜻을 깨닫기가 어렵지요. 그 틀 안에서 곧 자기 한계 안에서 진리를 받아들이고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만큼 성령의 음성도 깊이 있게 듣기가 어렵습니다. 오랜 세월 신앙생활 했고 일꾼으로 충성해 왔다고 해도 만족스런 발전이 없습니다. 영적인 열매도 부족한 것을 볼 수 있지요. 그러므로 반드시 의와 틀을 깨뜨려야 합니다. 이 의와 틀이 있으면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기 때문이지요.

2. 믿음의 3단계에서 버려야 할 육신의 생각

육신의 생각 첫 번째는 믿음의 1단계에서 버려야 할 하나님을 믿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육신의 생각이며 두 번째는 믿음의 2단계에서 버려야 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게 하는 육신의 생각이라 했습니다. 육신의 생각 세 번째는 믿음의 3단계에서 버려야 할 자신이 깨닫지 못하는 가운데 의와 틀에서 나오는 육신의 생각입니다. 이 육신의 생각을 깨뜨리지 못해서 영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영의 문턱에 머무르는 성도들이 있지요.

하나님께서는 영으로 들어가는 것이 참으로 쉬운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육신의 생각을 깨뜨리지 않는 한은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가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요.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3단계 99퍼센트까지 믿음이 성장해서 4단계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이렇게 수치만 보면 1퍼센트만 이루면 되니까 곧 영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지만 고질적인 육신의 생각을 깨뜨리지 못해서 쉽게 그 문턱을 넘어서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1) 기 속에 깊이 숨어 있는 기질적인 틀
태어날 때 부모로부터 받은 기질이 기 속에 깊이 감춰져 있어서 이를 잘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육신의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아도 이 기질 자체에서 육신의 생각이 발동되지요.

예를 들어 내성적인 기질을 타고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대체로 늘 조용합니다. 성내거나 다투어서 화평을 깨는 일을 보기 힘들지요. 그래서 특별히 사람과의 관계에서 연단을 받는 일이 별로 없기 때문에 자신이 잘 발견되지 않습니다. 만약 이런 사람이 온유함을 인정받아 어떤 기관의 머리가 됐다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조직의 머리는 물론 온유해야 하지만 담대하고 결단력이 있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내성적인 사람은 자기 의사를 분명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요. 자신감이 적고 소극적인 경우도 많구요. 그렇다 보니 적극적으로 일을 추진해야 할 때도 소극적으로 대처할 때가 있습니다. 항상 자신이 먼저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고 담대하게 이끌어 주어야 하는데 그런 분야도 취약합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주변 사람과 걸리는 일도 없고 또 항상 남을 선하게 바라봐 주므로 자신의 부족함을 잘 깨닫지 못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외향적인 기질을 타고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열정적이고 표현력도 좋고 활동적이어서 대인관계도 넓습니다. 여러 가지 분야에 앞장서서 충성합니다. 신앙생활 하는 데 있어서 열정은 참으로 중요하고 또 필요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열심이 있는 반면 섬김이 부족합니다.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더 낫게 여기고 편안하게 해 주는 분야가 취약하지요.

예를 들어 교회 행사가 있을 때면 봉사할 일이 분야분야 많습니다. 이때 자신이 특히 사모하는 분야에 지원자가 많습니다. 이런 경우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마음이라면 얼마든지 다른 누군가에게 양보할 수 있지요. 그런데 어느 모로 보나 그 분야는 반드시 자신이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잘 감당할 자신도 있구요. 그래서 결국 양보하지 않으므로 그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에 ‘내가 사모함이 더 승해서 결국 내가 맡게 된 것이라’고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합니다. 섬김이 부족한 마음, 자신을 앞세우는 마음, 남을 자신보다 낫게 여기지 못하는 마음은 깨닫지 못하지요. 외향적이고 적극적인 기질이 틀이 되어 한 발자국 물러나야 할 때도 ‘영을 사모해야 한다. 침노해야 한다’ 이런 생각 속에 화평을 이루지 못하는 것입니다.

2) 성장하면서 환경에 의해 형성된 성격의 틀
삶의 굴곡을 많이 겪으면서 부정적이고 어두운 성격을 갖게 된 사람들이 있지요. 슬픔과 원망 가운데 세상을 어둡게만 보고 살아온 시각이 성격으로 굳은 것입니다. 이 성격이 신앙생활에도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두운 성격의 틀에서 나온 육신의 생각 때문에 힘들게 신앙생활 하지요.

예를 들어 죄를 버리기 위해, 응답 받기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기도하고 충성하며 달려갑니다. 그러다가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축복을 자기와 비슷한 입장에 있는 다른 사람이 먼저 받았습니다. 또는 다른 사람이 먼저 큰 직분을 받았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앞서 간다는 느낌을 받자 초조해지기도 하고 낙심되기도 합니다. 진리와 함께 온전히 기뻐하지 못하지요.

또 어떤 사람은 범사에 자기를 스스로 정죄하고 질책합니다. 자기 생각의 틀 속에서 사랑의 하나님보다는 율법의 하나님, 심판의 하나님으로 느낍니다. 두려움의 하나님으로 느끼지요. 하나님을 사랑해서 기쁘게 진리를 행하는 것이 아니라 징계 받을까봐 두려워서 행합니다. 작은 실수만 해도 심하게 자책합니다. 기도할 기운조차 잃어버리고 하나님 앞에 나가지도 못하지요.

물론 믿음의 반석에 서면 이 정도까지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의 틀로 인해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느끼지 못하기도 하지요. 다른 사람을 대할 때도 상대를 그 사람 믿음의 분량에 따라 이해하고 용납하기보다는, 자기 틀에 맞춰 바라봅니다. 상대의 부족함을 보면 답답하여 지적하고 가르치려는 마음이 앞섭니다.

믿음이 아직 연약한 사람을 억지로 끌고 가려고 하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 그 영혼에게 하나님을 두려움의 하나님으로, 신앙생활을 힘든 것으로 심어 주기도 하지요. 이렇게 하는 것이 영혼을 사랑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자신이나 주변 사람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3) 미세한 비진리에서 나오는 육신의 생각
어떤 사람은 마음을 진리로 많이 일구었는데 미세한 비진리까지 온전히 벗지 못해서 육신의 생각이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일꾼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대로 순종하고자 합니다. 질서상 윗사람이나 동역자가 지적하거나 어떤 권면을 해도 그대로 순종하려고 하지요. 그런데 문제는 동시에 불편한 마음이 함께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조언이나 권면을 수긍하기는 하지만 순간적으로 불편한 생각이 스쳐지나갑니다.

99퍼센트는 ‘아멘’ 하고 순종할 마음이어도 1퍼센트라도 불편한 마음이 있다면 그 마음은 영의 마음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불편한 마음이 0.1퍼센트만 있어도 아직 영이 아닌 육이지요. 그런데도 99.9퍼센트는 선한 마음이기에 또 육신의 생각은 아주 잠깐 스쳐지나간 것이기에 나머지 0.1퍼센트를 덮어버립니다. 그러니 미세한 비진리를 벗을 수가 없고 영의 문턱을 넘지 못하지요. 다음 시간에 이어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 주간에는 우리나라 최대의 명절인 추석이 있습니다. 둥근 달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풍성한 수확물처럼 넉넉한 마음으로 가족과 친척들을 섬기며, 주님의 향기를 발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상에게 절하는 일이 결코 없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공간 안에서 지킴 받고 축복받는 충만한 명절 보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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