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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나님의 사랑
설교자 강사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요일 4:16 날짜 2015.08.02
진정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사람이라면 세상의 헛된 것을 버릴 수 있습니다. 그 사랑 안에서 느끼는 행복과 즐거움이 얼마나 큰지를 맛보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신앙생활을 통해 아름다운 열매로 나올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 깊이 느끼고 급속한 온 영의 흐름 속에 하나님의 참 자녀, 마지막 때 귀한 일꾼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을 가장 사랑하는 분이 누구일까요? 바로 여러분을 지으시고, 우주보다 귀히 여기시며 여러분의 삶을 책임지기 원하시는 분, 구하는 대로 무엇이든지 주기 원하시는 분, 바로 창조주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사람은 두려울 것도 없고 부족할 것도 없습니다. 지식이나 재물, 배경 등 내세울 것이 전혀 없어도 하나님을 믿고 온전히 의지한다면 모든 것을 채워 주시며 앞길을 책임져 주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말씀에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했습니다. 여러분은 그 사랑을 진정 아십니까? ‘나같이 작고 아무것도 아닌 영혼을, 크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사랑해 주시는지’ 그 사랑을 마음 깊이 느끼시기 원합니다. 그 사랑을 느낄 때의 행복과 즐거움은 세상 어떤 행복과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세상 친구도, 오락도, TV도, 물질도, 이성도, 권세도 어떤 것에 비할 수 없지요.

첫째, 하나님의 사랑은 변화되기를 기다려 주시는 사랑입니다

누가복음 15장을 보면 아버지의 기다림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그중 한 아들이 아버지의 유산을 미리 받아 먼 나라로 떠났습니다. 성공에 대한 꿈과 비전이 있었지만 현실은 냉혹했지요. 결국 세상 유혹에 넘어가 방탕하게 살다가 재산을 탕진했고, 흉년까지 들어 돼지 먹이조차 얻어먹기 힘든 어려운 처지가 됐습니다.
그제야 아들은 아버지를 생각합니다. ‘아버지의 집에서는 품꾼들조차 양식이 넉넉한데 나는 여기서 굶어 죽게 됐구나.’ 하며 집으로 돌아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지요. 물론 아버지가 용서하고 받아 주실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못했습니다. 거지와 다름없이 돌아온 자신을 보면 호통을 치면서 내쫓아 버리실지도 모르고, 혹은 자신을 잊어버리셨을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심정은 아들의 생각과 전혀 달랐습니다. 아들의 성화에 못 이겨 재산을 주긴 했지만 그 아들이 집을 떠난 후 아버지는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지요. 틈만 나면 마을 밖으로 난 길을 바라보며 ‘혹시 오늘은 내 아들이 돌아오지 않을까?’ 기다리고 기다렸습니다. 1년, 2년이 아니라 10년이라도 아버지는 기다렸을 것입니다. 얼마나 잘못했는지가 문제가 아니라 사랑하는 아들이기 때문에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잘못을 책망하려고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낡고 더러운 옷을 벗기고 씻긴 후에 가장 좋은 것으로 단장시키고 잔치를 벌여 주기 위해 기다리지요.
집에 돌아온 아들은 전과 같이 좋은 것을 누리며 살지만 그 마음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입니다. 자신이 먹고 입고 누리는 모든 것에 대해 전에는 당연히 여겼지만 이제는 감사가 가득하지요. 또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시게 했던 것만큼 이제는 위로가 되어 드리기 원하여 기뻐하실 만한 일을 찾아 열심히 행합니다. 이런 아들을 볼 때 아버지도 큰 위로와 행복을 얻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아버지 하나님도 저와 여러분을 태초부터 기다리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것을, 성령을 받아 진리로 변화될 것을 기다리셨고 결국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줄 때가 올 것을 기다리셨지요. 이렇게 참된 자녀로 변화되는 날에 마침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려는 것은 새 예루살렘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을 가득 실어 지어 놓으신 아름다운 천국의 영광을 우리와 함께 영원히 누리시기 위해서 지금도 아버지 하나님은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사랑은 변화되기까지 오래 참아 주시는 사랑입니다

기다림 안에는 간절한 소망이 있습니다. 이 소망이 간절한 만큼 오래 참을 수 있지요. 오래 참는다는 것은 그저 가만히 앉아서 원하는 대로 이뤄지기를 마냥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로 인해 수고와 노력이 따르고 감당해야 할 몫이 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도 인간을 경작하시면서 많은 슬픔과 고통의 시간들을 겪으셨습니다.
어떤 성도님은 구약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을 보면서 한탄하셨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큰 권능을 보면서도 늘 원망하고 우상을 섬기며 범죄하는 것이 이해가 안 되셨던 것이지요. 그러자 옆에서 이 말을 들으신 분이 설명하기를,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만이 아니라 변화되기 전 우리의 모습입니다.”라고 하자 그만 말문이 막히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만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진리로 변화되기 전에는 아무리 큰 체험을 하고 은혜를 입어도 하나님의 사랑을 쉽게 저버립니다. 어제는 홍해를 가르신 하나님을 찬양했다가도 오늘은 물이 없으니 죽겠다고 불평하지요. 힘든 일이 있으면 금세 원망하고, 기도한 대로 신속히 이뤄지지 않으면 받은 은혜까지 쏟아 버립니다. 백성들이 당장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그들 자신의 불신앙 때문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분명히 알면서도 당장 좋은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현실이 싫고, 광야에서 고생하는 것이 지겨워졌기에 하나님 탓, 남의 탓을 하고 싶은 것입니다. “애굽에 있을 때가 좋았어,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는 백성들처럼 다시 세상을 취할 핑계를 찾으려 하지요.
만약 성령의 충만함이 예전보다 덜한 것 같고 세상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면 먼저는 자신의 신앙을 돌아봐야 합니다. 죄를 버려 나가는 열심이 식지는 않았는지, 마음 다해 드리던 예배와 충성이 형식적으로 변질되지는 않았는지 점검해 봐야 하지요. 그런데 많은 사람이 대부분 이런 경우 자신을 돌아보기보다는 남의 탓, 환경 탓을 하려 합니다. 차마 직접적으로 원망하지는 못하지만 은근히 하나님께 서운함을 품기도 하지요.
이럴 때는 고라 같은 사람들이 나타나면 쉽게 귀를 기울입니다. 자기 욕심 속에 쉽게 가는 길을 찾다보니 악한 자들의 말에 솔깃하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선을 좇기보다는 미혹하는 말을 믿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당장 눈앞의 한 가지가 자기 생각에 안 맞으면 이전에 백 가지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했어도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기억한다 해도 우연으로 돌리지요. 이것이 바로 변질되는 육의 속성입니다.

성경을 보면 때로는 사랑의 하나님께서 노아의 홍수나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처럼 공의를 행하셔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세상에서도 구제역이나 조류 독감에 걸리면 살릴 방법이 없듯이 영적으로도 죄악이 한계에 이르면 더 이상 기회를 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때에도 하나님께서는 ‘기회를 많이 줬지만 공의가 있으니까 어쩔 수 없지.’ 하고 쉽게 심판하시지 않습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매를 들 때 부모의 가슴에는 멍이 듭니다. 하물며 멸망으로 가는 인생들을 보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애통은 어떠하시겠습니까? 로마서 8장 26절에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했습니다. 성도들이 연약해 빛 가운데 살지 못할 때 마음 안에 계신 성령님도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아파하십니다.
이처럼 죄로 인해 사단의 송사를 받고 여러 가지 시험 환난을 당하는 자녀들을 볼 때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함께 마음 아파하셨습니다. 수천 년의 세월 동안 하나님의 마음에는 이런 아픔들이 차곡차곡 쌓여 왔습니다. 그 모든 아픔을 감수하시면서도 오래 참으신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에 무수한 천국의 열매들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벧후 3:15).

셋째, 하나님의 사랑은 변화될 것을 믿어 주시는 사랑입니다

오래 참고 기다릴 수 있는 이유는 바라는 대로 이뤄지리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농부가 풍성한 열매를 거두리라고 믿지 않으면 씨를 뿌릴 수 없습니다. 자녀를 낳아 기를 때도 부모는 자녀가 잘 성장할 것을 믿기 때문에 낳습니다.
하나님께서 루시퍼의 배신과 아담의 불순종을 감수하시고,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시면서까지 경작의 섭리를 이뤄 가시는 것도 우리가 변화될 것을 믿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우리를 믿으셨기에 십자가를 지실 수가 있으셨지요.
예수님께서 잡히시고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잠시 갇혀 계신 동안 기도하신 내용을 성령의 교통함 속에 알려 주신 적이 있습니다. “한 자는 나를 사랑하되 아직 깨우침이 부족하고, 한 자는 마음이 여려 눈물이 많고, 또 한 자는 믿음이 연약하여 여러 생각이 있고, 또 한 자는 중심이 곧아 꺾어지기 쉽고… 그들이 나를 사랑하여 각기 가야 할 바 어떤 이는 순교의 길로, 기쁨의 길로 아버지의 원하시는 길로 갈 것이니다.”
세상에 남겨 두고 가는 제자들에게는 이런저런 연약한 모습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이 앞으로 변화되어 순교의 사명까지 넉넉히 감당할 줄 믿으셨지요. 그러기에 그들을 아버지께 맡기고 십자가를 기쁨으로 지실 수가 있었습니다. 이제 부활 승천하신 주님은 제자들을 믿어 주신 것처럼 여러분을 믿으시기에 여러분의 천국 집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곳에서 만날 때까지 잡수시지도 않고 잔치를 즐기지도 않으시면서 저와 여러분을 위해 중보의 기도를 올리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버지 하나님께서, 주님께서 여러분을 믿으셨기에 오래 참고 기다리신 것처럼 저도 여러분을 믿습니다. 그리고 모든 성도님들이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올 것을 믿음으로 바라봅니다. 마지막 때, 인간 경작의 역사 가운데 가장 많은 영혼들이 새 예루살렘의 참 열매들로 나올 것을 한순간도 의심하지 않았기에 견뎌올 수 있었습니다. 이 믿음, 소망, 기다림이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변치 않을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나를 믿어 주시는 하나님, 잠시 넘어져도 “괜찮다.” “할 수 있다.”고 다시 손을 잡아 주시는 아버지 하나님이 계십니다. 십자가의 고통까지 감당하시며 나를 믿어 주시는 주님이 계십니다. 나를 반드시 온 영으로 이끌어 갈 목자와 밀어 주고 끌어 주며 함께 가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이 사실을 기억할 때 온 영의 흐름을 타고 능히 아버지의 참 자녀로 나올 수 있지요. 그래서 마지막 때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는 귀한 일꾼들이 되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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