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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레위기 강해(7)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레1:10-13 날짜 2003.01.26
오늘은 양과 염소를 번제로 드리는 절차와 영적인 의미, 그리고 이에 담긴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에 대해 증거하고자 합니다.

1. 그 예물이 떼의 양이나 염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드릴지니

구약의 제사법은 우리의 예배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번제란 오늘날 각종 절기 예배들을 포함한 모든 주일 예배로서 "내가 살아 계신 하나님을 인정하며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합니다" 하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죄사함받고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거함으로 하나님께 지킴받고 보호받을 자격을 얻게 되는 필수적인 제사이지요.
그런데 구약시대 사람들이 번제를 드릴 때마다 항상 송아지로 제물을 삼아야 한다면 한 가지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오늘날도 송아지는 비싼 것인데 가축이 귀하던 시절에 때를 따라 흠 없는 송아지를 잡아서 번제로 드려야 한다면 가난한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본문 레위기 1:10을 보면 "만일 그 예물이 떼의 양이나 염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드릴지니" 했고, 레위기 1:14에는 "만일 여호와께 드리는 예물이 새의 번제이면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새끼로 예물을 삼을 것이요" 했습니다. 원래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려면 흠 없는 수송아지가 가장 적합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소를 드릴 형편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자비와 긍휼하심 가운데 각 사람이 상황과 형편에 따라, 곧 송아지를 드릴 수 없는 사람에게는 양이나 염소를, 그보다 더욱 가난하여 그조차 구할 수 없다면 비둘기를 번제로 드릴 수 있게 하셨습니다.
소와 양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로서 적합한 이유는 이미 레위기 강해 세 번째 시간에 설명을 했지요. 소와 양보다는 못하지만 염소의 경우에도 사람들이 쉽게 구할 수 있는 가축 중에서는 비교적 제물로 쓰기에 합당한 짐승입니다. 초식동물로서 다른 짐승들보다는 유순한 편에 속하고 젖이나 가죽을 주며 고기를 제공하여 유익을 주는 짐승이지요.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허락하신 비둘기 역시, 온순하고 영리하여 길들이기 쉬운 짐승으로 하나님께 드리기에 적합한 제물입니다.
각 사람의 상황과 여건에 따라 번제를 받으시는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우리의 신앙 생활에서도 각 사람의 능력과 수준을 고려하여 예배를 받으십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예배를 드릴 때도 각 사람의 지능, 학력과 나이 등에 따라 말씀에 대한 깨우침이나 은혜가 다 다릅니다. 똑같이 예배를 드린다 해도 머리가 좋고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라면 말씀을 깨우치거나 기억하며 마음에 명심하는 것이 비교적 더 쉬울 수 있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너는 머리가 나빠서 잘 깨닫지 못했으니까 예배를 제대로 드리지 않았다" 하시는 것이 아니라 정녕 중심으로 하나님께 예배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중심을 받으시고 "너는 향기로운 예물을 드렸다" 인정하십니다. 또 연로하신 분들 중에 연세로 인해서 말씀을 잘 이해하지 못하거나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지요. 이러한 경우에도 예배를 잘 드리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드렸다면 모든 형편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그 중심을 보시므로 긍휼히 여기시고 기쁨으로 예배를 받아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이 기억하실 것은 이런 경우도 성령의 감동 가운데 예배를 드리면 내 지혜나 지식이 좀 부족하거나 나이가 많다 해도 하나님의 능력이 임한다는 사실입니다. 성령의 역사 속에서 듣는 말씀을 능히 깨우치고 양식삼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는 부족해서 못해요, 노력해도 잘 안 돼요" 하는 것이 아니라 중심으로 힘써 드리면서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면 되는 것이지요.
번제를 드릴 때, 예물은 여러 종류가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무엇을 드리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믿음을 가지고 중심을 다해 드렸는가" 하는 점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생활비 전체를 믿음과 사랑으로 드린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을 기뻐하셨던 것처럼, 만약 비둘기도 겨우 드릴 형편의 사람인데 마음에 주관을 받아서 믿음으로 염소를 드렸다면 이는 부유한 사람이 드린 송아지보다 더욱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경제적인 형편에 따라 제물은 달라질 수 있지만 어떤 제물을 드릴 때라도, 드리는 사람의 마음 자세는 항상 거룩하고 온전해야 합니다. 그래서 양이나 염소의 경우 송아지와 마찬가지로 "흠 없는 수컷"을 드리라 했지요. 영적으로, 흠 없는 제물을 드린다는 것은 우리가 예배할 때 기쁨과 감사함의 온전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예배해야 함을 뜻합니다. 또 수컷으로 드리라는 것은 "변개함 없이 정한 중심으로 예배해야 함"을 의미하지요.

2. 단 북편에서 여호와 앞에서 잡을 것이요 그 피를 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

레위기 1:11을 보면 "그가 단 북편에서 여호와 앞에서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 했습니다. 제물을 잡아 피를 흘려야 하고 그 피를 단 사면에 발라서 죄사함을 받는 것은 소의 번제에서 이미 설명했습니다.
그러면 제물을 잡을 때 단의 북편에서 잡으라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북편은 영적으로 차갑고 어두운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의 재앙이나 고통을 예언할 때 주로 북방에서부터 이른다고 표현하고 있지요(렘 1:14, 렘 4:6). 물론 성경에서 북쪽이라는 말이 단순히 방위를 표시하는 경우도 있지만, 특별히 영적인 의미를 담고 있을 때, 북편 혹은 북방이란 주로 날카롭고 싸늘하며 어둡고 차가운 곳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단 북편에서 제물을 잡으라" 하실 때도 영적인 의미로서 북편을 의미합니다. 번제의 제물을 잡는 것은 죄로 인해 마땅히 죽어야 할 죄인들을 대신하여 죽이는 것입니다. 죄인들이 받아야 할 사망의 저주가 제물에게 옮겨지는 것이지요.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죄를 기뻐하지 않으시며 죄인들은 하나님과 끊어져서 버려집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인류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예수님은 잠시나마 하나님께 외면당하셔야 했지요. 사역하시는 동안 항상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시던 예수님이셨지만, 모든 인류의 죄짐을 지고 죽으시는 순간만큼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시고 "하나님"이라 부르시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막 15:34).
성경 곳곳에 보면 죄인들이 가게 될 지옥을 묘사할 때 "바깥 어두운 데" 떨어져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했지요. 이렇게 죄인들은 어둡고 두려운 곳에서 죄값을 갚아야 하는데, 제물이 그 죄값을 대신 지고 죽어야 하는 장소를 하나님께서는 단의 북편으로 정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죄를 지고 십자가를 지신 장소도 골고다 즉 "해골의 곳"이라 하여 그 지명만 들어도 어둡고 무서운 곳에서 죄의 값을 감당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죽음의 자리에 예수님께서 서심으로 우리의 죄값을 사해 주셨기에 우리는 더 이상 어둡고 무서운 지옥에 가지 않고 밝게 빛나며 영광스러운 천국에서 영원히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이지요.
다음으로 제물의 피를 단 사면에 뿌린다는 것도 이미 소의 번제에서 설명을 했습니다. 우리가 동서남북 어느 곳에서 지은 죄이든 모든 죄를 사하는 의미로 피를 단 사면에 뿌리는 것입니다. 진리에서 벗어나 생각하고 행한 모든 일들을 사함받기 위한 것이지요. 이렇게 사함받은 후로는 다시는 범죄치 않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로만 가며 진리로만 행할 수 있어야 한다 했습니다.
본문 레위기 1:12-13에도 이미 말씀드린 내용이 나오는데 "그는 그것의 각을 뜨고 그 머리와 그 기름을 베어 낼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다 단 윗 불 위에 있는 나무에 벌여 놓을 것이며 그 내장과 정갱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가져다가 단 위에 불살라 번제를 삼을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했습니다.
간략히 설명하면 제물의 각을 뜨는 것은 질서를 좇아 예배의 순서가 정해져 있는데 모든 순서들을 다 온전히 드려야 온전한 번제가 되는 것이라 했습니다. 머리를 불사른다는 것은 비진리의 생각을 버리고 잡념 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여 예배하는 것이고 기름을 불사른다는 것은 진액을 다하고 생명을 다해, 곧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기뻐받으실 만한 영적 예배를 드리는 것이라 했지요.
단 윗 불 위에 나무를 벌여 놓는 것은 예배드릴 때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성령의 감동으로 깨우치고 양식삼아야 하며 내장과 정갱이의 더러움을 물로 씻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죄악의 더러움을 다 씻어 내야 함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몸으로 범죄하여 남을 속이고 욕하고 때리며 각종 죄를 범합니다. 또 몸으로 직접 범죄하지 않는다 해도 마음으로 미움, 시기, 질투, 교만 등의 죄를 범하지요. 세상 사람들은 마음이 아무리 죄악으로 더러워도 그것을 범죄라 인정하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마음속의 죄악들도 행함으로 짓는 죄와 마찬가지로 더럽고 추악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은 행함으로나 마음으로나 범죄하는 모든 것들을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철저히 벗어 버려야 합니다. 더구나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우리의 경우는 "이것만은 좀 있다가 버려야지" 생각하며 지체할 여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비춰 보아 죄악이라고 깨달으면, 또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즉시로 순종해서 버려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급속한 영의 물결을 타고 그 흐름에 동참하여 새예루살렘에 들어가는 행렬에서 낙오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구약시대 하나님의 백성들은 반드시 번제를 드려야만 죄를 사함받고 구원받아 생명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약 2000년 전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음을 통해 이 모든 번제의 과정들을 감당해 주심으로 우리는 주를 믿고 성전에 나와 주일을 거룩하게 지킴으로 번제를 드린 것과 같은 축복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죄를 사함받고 하나님 안에서 지킴받으며 거룩하신 하나님과 교통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매주일 예배를 드릴 때마다 대속해 주신 주님의 사랑을 더욱 깊이 마음에 새기며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참된 의미의 영적 번제를 드림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의 삶 가운데 온전한 축복과 응답으로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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