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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한계시록 강해(100)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계22:18-21 날짜 2009.06.12
지난 시간에 마치지 못한 17절 후반을 먼저 말씀드리고, 오늘 본문으로 들어가겠습니다.

1.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17절 후반에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했습니다.
여기서 듣는 자란 복음을 듣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귀로만 듣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믿고 그대로 행해야 합니다. 그래야 구원받을 수 있고, 더 나아가 새 예루살렘에도 들어갈 수 있습니다. 로마서 2장 13절에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했습니다. 천국에 들어갈 자격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를 믿을 때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고, 믿음의 장성한 분량에 이른 사람, 곧 참으로 의롭고 거룩하게 변화된 사람이라야 새 예루살렘까지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목마른 자가 나오는데 의에 대해, 진리에 대해 주리고 목마른 사람을 말합니다.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인은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지만 지금 함께 사는 사람도 남편이 아니라" 했습니다. 그렇게 남편이 많이 바뀌었다면, 이 여인의 인생은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고달프고 힘든 삶을 인내하며 어찌하든 만족을 찾아보려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는 진정으로 충만함과 기쁨을 줄 사람을 찾을 수가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곤고했겠으며 얼마나 갈급했겠습니까? 사마리아 여인처럼, 사람들은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갈급함을 채우고자 육적인 것을 취하고 또 취해 봅니다. 그러나 육을 아무리 취해도 그 마음에 진정한 해갈은 되지 않습니다. 짠 바닷물을 마시는 것처럼, 오히려 육을 취할수록 갈급함은 더해 갑니다. 이럴 때는 육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생수를 찾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4장 14절에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생명수이며, 주리고 목마른 자를 만족시킬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만나고 성령을 받았을 때, 그 마음에 생명수가 채워지는 것을 느끼셨습니다. 목마름이 해결되고, 희열이 넘쳤습니다. 이처럼 거듭나는 기쁨을 맛본 사람들은 변화된 삶을 삽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열심히 행해 나갑니다. 그 갈급함을 채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 좋아서 부지런히 배우고 변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날마다 성령의 충만함 속에 영원히 솟아나는 생수를 공급받게 됩니다. 영생을 사모하며 의에 갈급한 사람은 누구라도 값없이 생명수를 받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3장 23-24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했습니다.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구원받은 것은 우리의 노력으로 인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도, 성령을 보내 주신 것도 우리가 잘한 것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아무런 대가 없이 구원의 길이 열렸고, 주의 이름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그런데 값없이 구원을 받는다고는 하지만, 한 번 성령을 받았다고 해서 무조건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갓난아기가 세상에 태어났는데, 젖도 먹지 않고 자라지도 않는다면 오래 살지 못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생명수를 마신 사람이라 해도 더 이상 생명수를 마시지 않고 영적인 변화가 없는 사람은 반드시 구원받으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내 죄로 인해 고난당하셨고 내가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녀라고 진정으로 믿는다면, 이제는 죄를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거룩하신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아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여전히 세상을 사랑하며 죄 가운데 살면, 한 번 성령을 받았다 해도 성령이 소멸될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하늘나라 생명책에서도 이름이 지워집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사람은 그 마음에 희열이 넘치고 감사가 가득하므로 부지런히 죄를 벗어 버립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열심히 충성하고 봉사하고 전도하고 심방합니다. 마음 다해 예물도 드립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무엇을 드린다 해도 그것으로 구원의 값을 지불할 수는 없습니다. 혹여 구원에 대해 어떤 값을 지불할 수 있다 해도, 그 값은 어느 정도라고 정할 수가 없습니다. 죽기까지 충성하고 세상 모든 보화를 드렸다 해도, 구원의 값을 치렀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귀한 독생자가 처참한 형벌과 사망을 대신 당해 주셨는데, 무엇으로 그 값을 치를 수가 있겠습니까? 또한 말할 수 없는 행복으로 가득한 천국을 주신 것도 도저히 갚을 길이 없는 은혜입니다. 그 은혜를 중심에서 깨닫는 사람이라면, 모든 삶을 주님께 드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주님께 드릴 때, 주님께서도 그냥 받고만 있지는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감사와 사랑의 향으로 드릴 때 기뻐 받으시고 우리가 드린 것보다 더 큰 축복으로 돌려주십니다. 성결의 능력을 더하시고 영혼이 잘되게 하십니다. 심는 대로 30배, 60배, 100배로 갚아 주시고 믿고 구하는 대로 마음의 소원에 응답해 주십니다.
요한일서 4장 10절에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했습니다. 이런 사랑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거룩함을 이루어 죄와 상관없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죄를 많이 버렸다고 해서 "내가 이렇게 잘했다"고 자랑할 일이 아닙니다. 당연히 할 일을 한 것일 뿐입니다. 죄를 버리기는 하는데 그 속도가 더디고 억지로 힘들게 싸워 버린다면, 이것도 민망한 일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인생의 밑바닥, 가장 깊은 절망 속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그 속에서 건짐을 받았습니다. 그 후로, 저는 그 은혜가 참으로 감사하고 행복해서 죄를 버린다는 것이 전혀 힘들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을 수 있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면 목숨이라도 기꺼이 드릴 수 있는 마음인데, 더러운 죄를 버리는 것이 무엇이 어렵습니까? 더구나 그 죄 때문에 질병과 재앙과 온갖 시험 환난을 겪는 것인데, 당장이라도 벗어 버려야 할 것입니다. 중심으로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 은혜를 깨달을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2. 성경 말씀을 더하거나 빼서는 안 됨

이어지는 18절-19절에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했습니다.
계시록뿐만 아니라 성경 66권에 기록된 모든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더하거나 빼서는 안 됩니다. 임의로 하나님의 말씀에 더하거나 빼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입니다. 이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성경에 기록된 재앙들을 더하신다 했습니다. 또 생명나무와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신다 했습니다. 이들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직분을 가졌다면, 이러한 말씀을 더욱 명심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요구하면서 "나는 주의 종이니, 주의 종의 말을 듣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저주하신다"고 위협합니다. 양 떼가 두려워 떨게 만드는 것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하면서, 양 떼에게 잘못된 길로 가도록 미혹하거나 강요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주와 축복의 기준은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주의 종에게 저주권과 축복권이 따르는 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말씀대로 가르치는 주의 종에게만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국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복이요, 하나님의 말씀에 거역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면 재앙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도 하나님께서 그를 미워하여 저주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에게 재앙을 가져다주는 것은 원수 마귀 사단입니다. 성도들이 진리 가운데 거하고 빛 가운데 거하면, 사단이 송사하지 못하게 하나님께서 지켜 주십니다. 하나님께 지킴받지 못하는 것은 자기 스스로 어둠 가운데 거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빼는 것도 하나님 앞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 중에서 자기 생각에 맞지 않는 부분은 빼거나 희석시켜서 가르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성결에 대한 부분입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면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죄와 악을 벗어 버리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거룩하게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하나님과 상관이 없습니다. 성경에는 "거룩하라", "성결하라", "죄를 버리라", "육체의 일을 행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이런 말씀들이 수없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런 말씀은 빼 버리고, 주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고 가르칩니다. "생명책에서 그 이름을 흐린다"는 말씀도 있는데, 이런 말씀도 싹 빼고 가르칩니다. 한 번 성령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아도 반드시 천국에 간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 밖에도, 방언이나 각종 은사를 금하며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을 잘못이라 가르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기사와 표적을 비롯하여 영의 세계에 대한 말씀들이 자기 지식과 생각에 맞지 않으면, 그런 부분은 빼고 가르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럴 때는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이나 천국과는 거리가 멀어집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것처럼 위태로운 상황에 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곧 하나님의 마음이요, 하나님 자체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결코 말씀을 더하거나 빼지 않습니다. 더구나 성경 말씀은 영원한 생명을 결정하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대로 행했는가, 행하지 않았는가에 따라 천국과 지옥이 나뉘는 심판의 말씀입니다. 그러니 결코 사람의 생각 속에 더하거나 빼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8장 6절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리라" 하셨습니다. 물에 빠져 죽으면 육의 생명을 잃지만, 영혼이 실족할 때는 영의 생명을 잃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는 삼가 근신하고 주의해야 합니다.

3.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20절에 "이것들을 증거 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요한계시록을 마무리 짓는 22장에서 "속히 오리라"는 말씀을 세 차례나 반복하십니다. 요한계시록 22장 7절에는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하셨고, 12절에도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모든 말씀을 마치는 이 시점에서, 주님께서는 다시 한 번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말씀하십니다. 여러분들은 이처럼 거듭하여 경계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깊이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언제 오실지 그날과 시를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마지막 때의 징조에 비춰 보면, 그때가 얼마나 가까운지는 알 수 있습니다. 더구나 지금은 사도 요한이 이 말씀을 기록한 2000여 년 전에 비해 끝날에 더욱 가까이 이르렀습니다. 설령 그 때가 넉넉히 남아 있다 할지라도, 각자의 마지막 날이 언제 이를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어린아이라 해도, 젊고 건강한 사람이라 해도,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당장이라도 가야 합니다. 언제라도 부르심에 응할 수 있도록 항상 준비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주께서 속히 오신다는 말씀을 들을 때, 여러분의 마음은 어떠하십니까? 주님을 맞을 준비가 덜 된 사람이라면, 주님께서 곧 오신다는 말을 듣는 것이 싫습니다. 그러나 진정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주님께서 곧 오신다는 말을 들을 때 소망이 되고 가슴이 벅찹니다. 그 장면을 상상하면 눈물부터 나오고, 그리운 주님께 무슨 말씀부터 드릴까, 어떤 모습으로 안길까 하면서 마음이 설렙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당시 믿음의 선진들은 칼에 목을 베이고 사자밥이 되면서도 기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에게 죽음은 두려운 고통의 순간이 아니라, 그립던 주님을 만날 수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하물며 여러분은 순교하는 것도 아니고 살아서 주님을 맞게 된다면 얼마나 더 행복한 일입니까? 그러니 "주님께서 곧 오신다"는 말을 들으면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하면서 기쁨으로 화답할 수 있습니다. 그 날을 얼마나 소망하는가에 따라 내가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는지, 또 내가 얼마나 신부단장이 되었는지를 스스로 측정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소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이 땅에서의 삶 속에도 하나님이 은혜, 주님의 은혜가 입혀집니다.

4.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21절에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했습니다. 여기서 모든 자들은 이미 주님을 믿는 자들과 앞으로 믿을 자들을 모두 포함합니다. 주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매일 매일의 삶 자체가 은혜입니다.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속하셨고 보혜사 성령을 보내 날마다 인도받게 하십니다. 진리 안에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주심같이 구하는 것마다 응답하시고 필요한 것을 채워 주시지요. 성령의 불담으로, 주님의 불꽃같은 눈동자로 지키시며 범사에 형통하게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모든 역사가 끝나면 그립던 주님의 품에 안기고 천국의 말할 수 없는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요 값없이 주신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기억할 것은, 이 은혜를 모든 사람에게 주셨을지라도 각자가 어떻게 받느냐에 따라 은혜의 결과가 달라진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사람은 입으로는 "이것도 감사하고, 저것도 감사하고,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말로는 은혜와 감사가 풍성한데 정작 그 마음은 변화가 더디기도 합니다. 감사할 줄도 모르고 은혜도 모르는 사람보다는 낫지만, 정말로 그 은혜에 감사한다면 그 은혜를 통해 변화되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말로만이 아니라 열매를 내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다가 깊은 진리를 깨우쳤다. 하거나, 나의 근본의 문제는 바로 이것이었구나. 하고 기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때는 "내가 이러한 사랑을 받았으니 내 생명 다해 은혜를 갚겠습니다." 하고 눈물로 고백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제 길이 보입니다. 속히 영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고백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지켜보면 그 뜨거웠던 마음이 식어 있기도 하고 더 이상 은혜에 반응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이처럼 은혜를 받고 쏟아 버리기를 반복해서는 안 됩니다. 낭떠러지에 매달린 사람이 밧줄을 필사적으로 잡는 것처럼, 그 은혜를 꼭 붙잡아야 합니다. 중심에 새겨서 영적인 열매를 내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결단하고 마음을 지키고자 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십니다. 베풀어 주신 모든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자 하는 마음으로 힘을 다해 성결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에 충성하며 더 많은 열매를 내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럴 때 아버지께서 성결의 능력뿐 아니라 실한 열매를 맺을 능력도 더하시고 은혜 위에 은혜를 더해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06년 10월 13일부터 2009년 6월 12일까지 2년 8개월 동안 100편에 걸쳐 말씀드린 요한계시록 강해를 마무리합니다. 마지막 때의 비밀한 말씀을 풀어 주시고, 말씀을 통해 믿음과 소망을 주신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요한계시록 강해를 통해 마지막 때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다시 한 번 정립하면서 혹여라도 7년 환난과 짐승의 표, 심판과 지옥 등의 말씀이 두렵고 힘들게 느껴지는 분이 계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런 말씀을 주시는 까닭은 겁을 주거나 힘들게 하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듣고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 천국에 이르게 하시려는 사랑을 표현하신 것입니다. 어찌하든 여러분을 더 좋은 천국에 들이시고자, 애틋한 마음으로 이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마지막 때가 될수록 육과 영은 점점 더 양극화 되고 세상을 좇는 사람들과 진리를 좇는 사람들도 뚜렷하게 구분됩니다. 아무리 교회에 다닌다 해도, 깨어 있지 않으면 세상 사람과 다름없이 방탕한 정욕과 죄악에 물들게 됩니다. 여러분은, 결코 이런 풍조에 물들어서는 안 됩니다. 깨어 기도하며 더욱 근신하여 진리 가운데 거해야 합니다. 그냥 이렇게 신앙생활하다 보면, 언젠가는 나도 영으로 들어가 있겠지 이런 식으로 안일하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혹은, 언제쯤 되면 주님이 오실까? 아직은 적당히 세상을 취하고 살다가 마지막 날이 눈앞에 닥친 것 같으면 그때 쯤 회개하고 열심히 해야지 이런 생각도 절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신 대로, 주님께서는 진실로 속히 오십니다. 그러므로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지 않으면, 마치 잠자다가 도적을 맞는 것같이 순간에 마지막 때를 맞게 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에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했습니다. 이 말씀처럼, 먼저 온전히 거룩함을 이루고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보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날마다 여러분에게 주어진 시간을 감사하며, 부지런히 마음의 두루마기를 빨아서 하루라도 빨리 성결을 이뤄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을 다시 만날 때까지 성결의 능력과 권능으로 멋지게 하나님의 나라를 이뤄나가야 합니다. 마지막 때 하나님의 섭리를 이뤄드리는 주역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시간 말씀을 들으시는 모든 분들이 영적 장수로서 마지막 순간에는 문들을 통해 거룩하신 하나님의 보좌 가까이에 이를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윗글 : 요한계시록 강해(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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