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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젖과 꿀이 흐르는 땅(7)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수6:12-16 날짜 2001.09.09
오늘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 요단강을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여리고 성을 정복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여리고 성을 정복하는 방법을 친히 알려 주신 하나님
믿음으로 행하여 범람하던 요단강을 멈추게 하고 마른 땅처럼 걸어서 건너간 이스라엘 백성들의 다음 목표물은 여리고 성이었습니다. 굳게 닫혀 출입하는 자가 없는 여리고 성을 정복하는 것은 범람하는 요단강을 건너는 것보다 더욱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여리고를 두른 두 겹의 성벽은 그 위로 마차가 지나다닐 정도로 두꺼우며 단단히 무장한 군사들이 방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 6:2 이하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미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여호수아의 손에 붙였다고 약속하시며 성벽을 무너뜨릴 수 있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려주십니다. 모든 군사가 엿새 동안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고 제 칠일에는 일곱 번을 도는 것인데 이 때 맨 앞에는 제사장 일곱 명이 양의 뿔로 만든 나팔을 잡고 그 뒤에는 하나님의 언약궤를 멘 사람들이 따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 칠일에 여리고 성을 일곱 번 돈 후에는 제사장들이 나팔을 길게 불고 그 때 온 백성이 큰 소리로 외치면 여리고 성이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칠일 동안 여리고 성을 돌게 하셨고, 제 칠일에는 여리고 성을 일곱 바퀴 돌게 하셨습니다. 또한 제사장 일곱이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나팔을 불게 하셨습니다. 일곱은 완전수로서 시종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것을 나타냅니다. 나아만 장군도 엘리사 선지자가 명한 대로 요단강 물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문둥병이 깨끗이 나았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여호수아 6:5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백성이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르면 성벽이 무너져 내린다고 알려 주시면서 온 백성이 큰 소리로 외치라고 명하셨습니다. 성경을 보면 선지자나 예수님의 제자들도 큰 소리로 부르짖어 기도하는 장면들이 수없이 나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요단강을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믿음으로 여리고 성을 정복하는 방법을 친히 알려 주셨습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고 불가능해 보이는 전술이지만 믿음의 훈련을 받은 이스라엘의 출애굽 2세대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2. 오직 순종함으로 여리고 성을 무너뜨린 이스라엘 백성
하나님의 능력으로 범람하는 요단강을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리고 성을 바라보며 배수진을 친 후, 여호수아를 통해 하나님께서 알려 주신 방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듣고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그래서 다음 날부터 여리고 사람들은 너무나 이상한 장면들을 보게 되었지요.
이스라엘의 온 군대와 백성들이 아침 일찍 성벽쪽으로 다가오더니 하나님의 언약궤와 함께 성 주변을 한 바퀴 돌고 나서는 그냥 진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둘째 날도 역시 돌멩이 하나 던지지 않은 채 성을 한 바퀴 돌기만 하고 돌아갔습니다. 그러기를 여섯째 날까지 계속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곱째 날에는 이스라엘의 행동이 좀 달랐습니다. 다른 때보다 일찍부터 나와서 일곱 바퀴를 돌더니 나팔소리를 길게 울리면서 백성들이 한 목소리로 함성을 지르는 것입니다. 그 순간 수많은 군사가 공격해도 구멍조차 내기 어려운 두 겹의 성벽이 일시에 무너져 내리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렇게 무너진 성벽 아래에서는 깔린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요란하였고 군사들도 두려움과 혼란으로 도망하는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쉽게 여리고 성을 정복할 수 있었지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사람이 살다보면 난공불락의 여리고 성과 같은 문제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이럴 때 의지가 강한 사람들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려고 하지만, 아무리 의지가 강하고 능력이 있어도 사람의 한계를 뛰어넘는 문제 앞에서는 낙심하여 주저앉아 버리게 되지요.
그러나 믿음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사람의 방법으로 불가능한 일도 하나님의 능력으로는 가능한 줄 믿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는가를 분별하여 담대히 믿음으로 행하면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홍해를 가르시고 이스라엘을 건져 내신 하나님께서 요단강을 멈추시고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듯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습니다.
시편 20:7에 "혹은 병거, 혹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말씀한 대로 세상 방법, 세상 지식을 동원하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의존하고 믿음으로 행군해 나가면 하나님이 앞서 싸워 주시고 항상 승리로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3. 여리고 성의 모든 것을 진멸하라고 명하신 하나님
여리고를 점령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성에서 얻은 노획물을 사사로이 취하지 않고 다 불사르거나 성물로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또한 여리고의 사람과 짐승은 다 죽였는데 혹자는 이처럼 모든 것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하여 너무 무서운 하나님이 아닌가 하면서 의문을 갖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하나님께서 이렇게 명하신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성에서 얻은 물건을 하나님께 드린 것은 오늘날 우리가 수입의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또한 여리고 성의 사람과 짐승을 죽이는 것은 이스라엘의 거룩함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일이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땅의 거민들은 많은 우상들을 음란하게 섬기며 극심한 죄악 가운데 타락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만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을 살려 두면 함께 거하다가 차츰 죄악에 물들게 되고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되므로 하나님께서는 여리고 사람들을 진멸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면 가나안 정복 전쟁이 부당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가나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그들의 땅을 빼앗아 이스라엘에게 주시고 거민들을 다 죽이라고까지 명하시는 이유는 가나안 정복 전쟁이 단순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축복하시기 위한 전쟁만이 아니라 죄악으로 관영한 가나안 거민들에 대한 공의로운 심판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살펴보면 일정한 지역의 사람들이 심히 타락하여 죄악이 관영할 때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들을 그냥 두셨다가는 온 세상 가운데 범죄가 전염병처럼 퍼져서 인간을 경작하는 섭리에 차질이 생기게 되므로 사람들의 죄악이 어느 한계에 달하면 하나님께서 공의 가운데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불과 유황으로 심판하신 것이나 노아 홍수 때, 물의 심판이 그러하지요.
이처럼 가나안 거민들도 심히 타락하여 장차 심판받을 상황이었는데 단지 심판의 방법이 바로 이스라엘에 의해 진멸당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심판받을 죄인들이라 해서 당장 진멸해 버리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죄악이 관영하여 더 이상 용납할 수 없을 때까지 오래 참고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끝까지 그들은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진멸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4. 하나님의 지키심을 받으려면 항상 진리 가운데 거해야
이러한 심판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선하고 하나님을 경외한 라합은 구별하여 하나님의 자비와 은총 가운데 거하게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라합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역사들을 들음으로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이스라엘의 정탐꾼들을 숨겨 주었습니다.
정탐꾼들은 여리고를 점령할 때 라합과 그 가족은 살려 주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이에는 단서가 있었습니다. 라합이 정탐꾼들을 창문으로 탈출시킬 때에 사용했던 붉은 줄을 창문에 매어 두고 라합과 그 가족들이 집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혼란스러운 전쟁 중에 지킴받기 위한 조건이었습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세상의 죄악이 관영하고 흑암이 짙어 날이 갈수록 전쟁과 기근, 지진과 태풍, 홍수, 질병 등 각종 재앙들이 범람합니다. 그러나 주 예수의 보혈의 공로로 말미암아 주를 믿는 자는 재앙을 당치 않게 하나님께서 지켜 주십니다. 보혈의 피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진리 안에 거하며 죄악된 세상과 짝하지 않아야 지킴받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요한일서 3:24에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말씀한 대로 우리가 계명을 지킬 때 주님이 내 안에 함께하시므로 항상 지킴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리고 성의 정복과 관련하여 우리는 또 하나의 놀라운 사건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죄악이 관영한 여리고 성을 무너뜨린 여호수아는 다시는 여리고가 건축되지 못할 것을 맹세하여 말하기를 "이 여리고 성을 누구든지 일어나서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장자를 잃을 것이요 문을 세울 때에 계자를 잃으리라"(수 6:26) 했지요.
그런데 약 500년 후, 아합 왕 시대에 여호수아의 이 말이 그대로 이루어졌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왕상 16:34). 하나님은 한 번 기억하신 일을 결코 잊지 않으시며, 또한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선지자의 말을 반드시 보장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여리고를 점령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이 성을 향해 진군하지만 처참한 패배를 당하게 된 이유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금성철벽 여리고 성도 수월하게 점령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작은 아이 성을 정복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리고 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이스라엘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으로 승리했다는 사실을 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잠언 21:31에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 말씀하신 대로 모든 일에 믿음으로 준비는 하지만 결과는 하나님께 달렸다는 사실을 깨달아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오직 믿음으로 순종하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성령의 밝은 음성과 주관에 귀 기울여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분별하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영적인 싸움을 주관하실 수 있도록 믿음을 내보이며 항상 승리의 삶을 영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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