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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령의 음성 주관 인도(9)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롬 8:12-16 날짜 2010.08.22
시끄러운 음악이 나오는 헤드폰을 끼고 있으면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의 말도 알아듣기 어렵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육신의 생각이 많으면 바로 우리 마음 안에 계신 성령의 음성을 듣기가 어렵지요. 육신의 생각을 벗어 버려야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들을 수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게 하는 육신의 생각들에 대해 증거 하겠습니다.

1. 마음을 진리로 일군 만큼 들을 수 있는 성령의 음성

주님을 영접했다고 해서 곧바로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듣고 온전하게 순종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을 진리로 일군 만큼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지요. 주님을 갓 영접한 믿음의 1단계에는 기억 장치에 비진리의 지식이 더 많습니다. 마음에 일군 진리의 분량도 적지요. 그래서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어렵고 세상에 있을 때처럼 구습대로 사는 것이 편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육신의 생각 때문에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말씀도 잘 행하지 못합니다. 아직 진리를 잘 모르기 때문에 무엇이 육신의 생각인지 분별하지도 못하지요.

믿음의 2단계는 진리의 말씀을 어느 정도 알고, 말씀대로 살고자 힘쓰는 단계입니다. 아직은 마음에서 벗어 버리지 못한 비진리가 많기 때문에 육신의 생각도 많습니다. 육신의 생각에 막혀서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지 못할 때가 많지요. 지난 시간에 육신의 생각으로 판단 정죄하는 경우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육신의 생각이 너무 많으면 판단 정죄를 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그러는지조차 깨닫지 못합니다. 이런 경우 먼저는 육신의 생각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믿음의 2단계 수준의 육신의 생각은 설교를 경청해서 듣다 보면 대부분 발견됩니다. 들은 말씀을 붙들고 간절히 기도하면 성령께서 더 분명하게 깨우쳐 주시지요.

같은 믿음의 2단계 안에서도 믿음이 조금 더 성장하면 자신을 발견하는 단계에 접어듭니다. 말씀을 통해 판단 정죄가 무엇인지 깨달으며 또 판단 정죄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막상 어떤 상황에 놓이면 여전히 판단 정죄가 나올 때가 많습니다. 아직 버리지 못한 비진리에서 육신의 생각이 먼저 나오기 때문이지요. 수군수군하고 싶은 마음, 미움, 교만 등 버리지 못한 비진리가 발동합니다. 떠오르는 육신의 생각을 물리치려고 해도 계속 떠오르지요. 솟구쳐 오르는 거센 물줄기를 억지로 막아도 물줄기가 여전히 솟아오르는 것처럼 마음의 비진리에서 육신의 생각이 계속 나옵니다.

2. 진리에 순종하지 못하게 하는 육신의 생각들

예를 들어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에 보면 성도로서 마땅히 행해야 하는 바들이 나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말씀합니다. 이 말씀을 모르는 성도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교회에 안 다니는 사람들도 많이 알지요. 액자에 넣어서 걸어두신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잘 안다고 해서 모두가 이 말씀대로 행하는 것은 아닙니다.

‘항상 기뻐하라’ 하셨는데도 기뻐하지 못할 때가 있지요. 염려하지 않으려고 해도 걱정 근심이 계속 밀려오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하고 육의 일들을 염려합니다. 또는 어떤 연단이 올 때 기쁨을 잃어버립니다. 자신의 죄를 발견하거나, 구하는 것에 대한 응답이 더디면 낙심하지요. 그런데 기뻐하지 못하는 것은 현실 때문이 아닙니다. 바로 육신의 생각이 마음에서 기쁨을 몰아낸 것이지요. 구원받은 하나님 자녀의 마음에는 항상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마음 안에 성령이 계시기 때문에 구원받은 기쁨, 천국 소망, 위로부터 주시는 평안이 있지요. 이 기쁨이 사라지게 하는 것이 바로 육신의 생각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현실만 보고 염려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말씀하셨습니다. 공중의 새도 먹이시고 들의 백합화도 입히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자녀들에게도 당연히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시기 때문이지요. 영의 생각을 하는 사람은 현실이 어떻든 간에 이 사실을 믿고 항상 기뻐합니다. 반면에 육신의 생각을 하는 사람은 이를 믿지 못하고 염려, 근심, 걱정 속에 삽니다. 아버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해야 하는데 세상 사람들처럼 자기 자신을 의지하지요. ‘내가 더 일해야 많이 벌 수 있고 이건 이렇게 해야 하고…’ 하면서 자기 힘과 지혜를 의지합니다. 그러다가 뜻대로 되지 않으면 낙심하지요.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하신 말씀에 순종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육신의 생각이 동원되면 당장 눈앞의 현실만 보게 되므로 말씀에 순종하기가 어렵지요. ‘너무 바빠서’ 또는 ‘하루 종일 일하고 나면 너무 피곤해서 기도할 힘이 없다’고 핑계를 댑니다. 기도한다고 해도 중언부언하거나 졸면서 시간을 채우기에 급급하지요. 그러나 성령은 어떻게 주관하실까요?

누가복음 22장 46절에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신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울려 주십니다. 빌립보서 4장 6절에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하신 말씀을 떠올려 주시지요. 빌립보서 4장 13절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기도하되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도록 주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기도는 어떤 기도입니까? 여러 번 설교해 드린 대로 습관을 좇아서, 무릎을 꿇고, 중심을 모아서,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땀 흘려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해야 하지요. 그런데 육신의 생각이 있으면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할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부르짖어 기도해야 한다는 말씀을 들어도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면 ‘조용히 묵상하는 것이 더 경건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부르짖어 기도하면 옆 사람이 내 기도를 듣지는 않을까? 나를 이상하게 보지는 않을까?’ 하고 사람의 눈치를 보기도 하지요. 저는 감사하게도 초신자 때부터 부르짖어 기도하도록 주관을 받았습니다. 처음부터 진리를 밝히 알아서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그저 부르짖어 기도하고 싶어서 혼자 산에 올라가 기도하곤 했지요. 교회에서는 부르짖어 기도할 수 없었고 또 내성적이어서 누가 제 기도를 듣는 것이 신경 쓰이다 보니 산을 자주 찾아간 것입니다. 나중에 주님의 음성을 듣고 또 하나님 말씀을 알게 되면서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 뜻임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또 어떻게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자세히 알게 되었지요.

기도할 때는 이렇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육신의 생각 속에 자신이 보기에 좋은 대로 기도하면 그 기도가 어떻게 하나님께 상달되겠습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도 없고 응답을 받을 수도 없지요. 물론 지금은 많은 성도님들이 이런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는 단계는 넘어선 줄 압니다. 그러나 새로 교회에 나오신 분들 중에는 아직 이런 생각을 떨쳐 버리지 못한 경우가 혹 있을 수 있지요.

‘범사에 감사하라’ 하신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육신의 생각 때문입니다. 누구나 감사할 일이 있을 때는 감사합니다. 그런데 감사하기 어려운 조건 속에 놓이면 감사하지 못하는 성도들이 있지요. 성도들 중에는 주님을 영접함과 동시에 갖가지 문제를 해결 받는 분들도 있지만 믿음이 성장하면서 점차적으로 문제를 해결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때 ‘나는 가난하고, 건강하지도 않고, 가정이 화목하지도 않고, 그래서 감사가 안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고 한다면 이 또한 육신의 생각임을 알아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 감사할 수 있습니다. 감사할 수 있는 조건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지요. 또 성령 안에서 믿음으로 감사하면 감사할 제목이 생깁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악조건도 좋은 조건으로, 불통도 형통으로 바꿔 주십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마가복음 9장 23절에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상황과 조건에 상관없이 믿음으로 항상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절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말씀하십니다. 베드로전서 5장 7절에는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했지요. 주님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나를 의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생각도 동원하지 않고 어린아이처럼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면 주님은 그 믿음을 보시고 현실을 바꿔 주십니다.

그런데 육신의 생각이 있는 한은 이렇게 응답받는 것이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말씀을 들어서 알기는 잘 알지만 그 말씀을 자신에게 적용하지는 못하기 때문이지요. 하나님을 모르던 때와 다름없이 자신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합니다. 세상 방법을 의지하지요. 그러다 안 되면 낙심하고 주저앉아 버립니다. 기뻐하지도, 기도하지도, 감사하지도 못하지요.

3. 육신의 생각을 깨뜨릴 수 있는 영적인 체험의 중요성

성도 여러분, 주님을 영접하자마자 전지전능하신 하나님만, 주님만 의지하는 믿음을 가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지 못하는 것은 마음에 채워진 비진리가 하루아침에 벗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생각의 문을 열고 마음의 문을 열어 주님을 영접하면 성령께서 마음에 들어오십니다. 성령의 도움으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을 수 있지요. 그런데 갓 주님을 영접한 성도는 대부분 이 영적인 믿음의 크기가 겨우 구원받을 정도에 불과합니다.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긴 하지만 이 믿음을 자신의 삶에 온전히 적용할 만큼 믿음이 큰 것은 아니지요.

신앙생활을 하면서 육신의 생각을 깨뜨리는 만큼 즉 마음에서 비진리를 벗어내는 만큼 이 영적인 믿음이 자라납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믿음의 힘’을 체험하는 만큼 육신의 생각이 깨어지고 영적인 믿음이 자라지요. 영적인 믿음이 자라서 믿음의 4단계 이상에 이른 분들이 한결같이 감사하는 제목이 있습니다. 이 믿음의 힘을 체험할 수 있는 제단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음에 감사하시지요. 이런 영적인 체험을 하면 육신의 생각이 깨집니다. 세상에 살면서 입력된 비진리의 지식이 깨어지지요. 그래서 신속하게 영적인 믿음이 자랍니다.

믿음이 장성한 분량에 이르면 그때부터는 현실을 보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만을 바라봅니다. 설령 파도 같은 시련이 와도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만 의지합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내 아버지시니 현실은 현실일 뿐이다. 기도하면 아니 될 것도 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지요. 이처럼 육신의 생각을 깨뜨리면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 쉽습니다. 또 항상 평탄한 길을 걷게 되니 행복하지요. 그러므로 신속히 육신의 생각을 깨뜨리고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들으며 쉽게 신앙생활 하는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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