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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령의 음성 주관 인도(14)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롬 8:12-16 날짜 2010.11.14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들으려면 의와 틀에서 나오는 육신의 생각도 깨뜨려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양심의 악, 본성의 악 등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악까지 찾아내서 버려야 합니다. 지난 시간에는 양심의 악에 대해 살펴보았고 이번 시간에는 본성의 악에 대해 살펴본 후 육신의 생각과 순종의 관계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1. 사람의 마음에 있는 모략을 길어내려면

잠언 20장 5절에 “사람의 마음에 있는 모략은 깊은 물 같으니라 그럴지라도 명철한 사람은 그것을 길어 내느니라” 했습니다. 모략은 전쟁에서의 승리나 성공적인 삶 같은 어떤 목적을 이루는 방법을 얻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은 원래 모략에 능한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뛰어난 사고력을 심어 주셨기 때문이지요. 인류 역사상 천재라고 불린 사람들조차 하나님께 부여받은 능력의 절반도 사용하지 못했다는 게 사람들의 견해입니다. 마음에 있는 모략을 왜 길어 내기 어려운 깊은 물 같다고 했는지 알 수 있지요. 그럴지라도 여러분은 이 모략을 얼마든지 길어 낼 수 있습니다. 바로 성령의 도움을 받으면 가능하지요.

단 조건이 있습니다. 먼저 마음 깊은 곳의 악부터 뽑아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은 선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뜻을 알려면 여러분도 선해져야 하지요. 의와 틀에서 나오는 육신의 생각은 대체로 마음 깊은 곳의 악에서 나옵니다. 따라서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들으려면 양심의 악, 본성의 악 등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악까지 찾아내서 버려야 합니다. 진정 선한 마음을 일구셔서 성령이 길어 올려 주시는 모략으로 날마다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본성의 악을 발견하여 버려야

본성은 ‘마음의 근본 성질’입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선과 악이 섞여 있는 본성을 타고 납니다. 인류는 모두 아담의 후손으로서 본성 속에 원죄를 물려받기 때문이지요. 물론 본성은 백 퍼센트 타고나는 것만으로 결정되지는 않습니다. 악한 본성을 타고났어도 성장하면서 마음에 선을 많이 받아들이면 본성이 선해집니다. 반대로 비교적 선한 본성을 타고났어도 악을 자꾸 받아들이면 악한 본성이 만들어지지요. 본성 속의 악은 양심의 악보다 더 깊습니다.

본성은 땅의 성질 곧 토질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잡초와 돌멩이를 제거하고 질서정연하게 작물을 심어 놓은 밭은 그냥 봐서는 토질이 좋은지 나쁜지 분간하기 어렵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명백한 비진리를 걷어내고 양심의 악도 뽑아내면 악의 모양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웬만해서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요. 이 본성에 악이 있으므로 자기도 모르게 육신의 생각을 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욥이 본성의 악을 버리는 과정을 살펴보면 이를 잘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단에게 욥을 자랑하십니다. 순전하고 정직하여 악에서 떠난, 세상에 둘도 없는 자라 말씀하셨지요. 이 말씀대로 욥은 행위적으로는 하나님의 뜻에 거치는 것이 전혀 없었지요. 그런데 이런 욥에게도 육신의 생각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욥은 자녀들이 잔치를 열어 즐기기라도 하면 죄를 범했을까봐 자녀들을 불러다가 번제를 드렸습니다. 성경은 “욥의 행사가 항상 이러하였더라”라고 기록합니다. 어떤 죄의 담도 만들지 않고 하나님과 화목하려는 욥의 행위는 참으로 순전합니다. 그런데 이 행위 이면에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욥은 죄인을 징계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했지요.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 쫓는다 했습니다. 욥이 징계를 받을까봐 두려워했다는 것은 욥의 마음에 온전한 사랑을 이루지 못했다는 증거이지요.

또 욥은 하나님을 오해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단의 송사를 받아들이심으로 욥에게 몇 차례 시험이 옵니다. 욥은 자녀도 재산도 다 잃었고 최후에는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악창이 났지요. 욥의 아내가 이 모습을 보고 욥에게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겠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말합니다. 욥은 위로받아야 할 아내에게 오히려 굴욕을 당하면서도 입술로 범죄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말을 들어보면 그가 하나님을 오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욥기 2장 10절 중반에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진리에 맞는 생각입니까? 아니지요. 잠언 10장 22절에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사람으로 부하게 하시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시느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복 받을 사람에게 복을 주시되 재앙을 겸해 주시는 분이 아니지요. 자녀들에게 좋은 것만 주시는 분입니다. 재앙은 원수 마귀 사단이 가져다줍니다. 욥에게 임한 재앙도 모두 사단이 준 것이지요.

만약 욥처럼 육신의 생각을 하는 일꾼이 범죄한 영혼을 상담해 준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하나님을 두려운 하나님으로 심어 주어서 오히려 하나님과 멀어지게 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이 본성 속의 악은 어떻게 발견할 수 있을까요? 바로 연단을 통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욥도 혹독한 연단을 통해 본성 속의 악을 깨달았습니다. 연단을 통해 본성 속의 악을 벗고 하나님과 참된 화목을 이루었지요. 그런데 꼭 이런 혹독한 연단을 받아야만 본성의 악이 발견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낱낱이 비추면 발견할 수 있지요.

히브리서 4장 12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말씀하지요. 더구나 여러분이 듣고 계신 성결의 복음은 말씀의 날을 더 예리하게 갈아세운 말씀입니다. 본성의 세미한 악까지 찔러 쪼개지요. 또 디모데전서 4장 5절에 보면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말씀과 기도로 자신을 조명하여 본성 속의 악을 발견하여 버리시기 바랍니다. ‘나는 특별히 어떤 죄를 지은 것 같지 않은데 뭔가 마음이 답답하다.’ 하는 분이 계십니까? 본성 속의 악이 그 원인일 수 있습니다. 자신의 마음에 참 평안이 없다면, 육신의 생각을 하고 있다는 뜻이지요. 불같이 기도해서 성령의 조명을 받아 본성의 악까지 버리는 복된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기 바랍니다.

3. 육신의 생각과 순종의 관계

육신의 생각을 깨뜨려야만 성령의 음성이나 주관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역으로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면 아직 남아 있는 육신의 생각이 깨어지기도 합니다.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면 사람의 생각을 초월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할 수 있습니다. 갖가지 문제를 해결 받을 수도 있고 소원이 응답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하나님 나라를 크게 이룰 수도 있지요. 이런 체험들을 통해 육신이 생각이 깨어집니다. 순종은 이처럼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는 일석이조의 복을 안겨 줍니다.

성경은 이렇게 성령의 음성 또는 하나님 말씀이나 주님 말씀에 순종하여 복을 받은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도 그중 한 사람이지요. 베드로는 ‘자기’가 매우 강한 사람이었지만 예수님께 순종의 훈련을 받은 결과 죽기까지 순종하는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가는 곳마다 성령의 역사를 베풀며 수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베드로가 육신의 생각을 깨뜨리고 순종했을 때 어떤 축복을 받았는지 또 어떤 과정을 통해 육신의 생각이 깨어졌는지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설명 드린 ‘육신의 생각 단계’를 토대로 잘 이해하셔서 큰 깨달음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이 시간 ‘나도 변화될 수 있다’는 소망이 더해지길 바랍니다.

베드로는 이스라엘에서도 변두리에 위치한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였습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오랜 세월 동안 이방인의 압제에 시달렸습니다. 그런 만큼 현실을 뒤엎고 자신들을 구원할 메시아를 갈구했지요. 다윗 왕과 같은 힘 있는 통치자 정치적 메시아가 나타나기를 기다렸습니다. 베드로도 이런 유대인들 중 한 명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도 베드로는 메시아에 대해 증거하는 세례 요한을 좇았지요. 그러다가 형제지간인 안드레의 인도로 예수님을 처음 만났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는 했지만 베드로가 자신의 모든 것을 뒤로하고 제자의 삶을 살기로 결단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베드로의 삶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누가복음 5장에 보면 베드로는 평소처럼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를 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웬일인지 밤새 씨름을 했는데도 고기가 잡히지 않았지요. 고기잡이를 그만 마무리하려고 하는데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배에 오르시더니 말씀을 증거하셨습니다. 그런 다음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하셨지요.

베드로는 베테랑 어부입니다. 갈릴리 호수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지요. 만약 이때 베드로가 ‘밤새도록 수고했는데도 허탕치지 않았는가? 경험도 지식도 없는 예수님이 나보다 고기 잡는 법을 잘 아실 리가 없지 않은가?’ 이런 육신의 생각을 동원했다면 예수님 말씀에 순종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뒤로하고 생각의 문을 열었습니다. 예수님 말씀에 순종했지요. 그러자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엄청난 양의 고기가 잡혔습니다. 건져 올린 고기를 담은 두 척의 배가 가라앉을 지경이 되었지요. 이를 본 베드로는 예수님 무릎 아래 엎드려서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합니다. 드디어 예수님을 향해 마음 문을 활짝 연 것이지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의 음성, 주관, 인도’ 설교를 한 번 듣고 끝내지 마시고 완전히 양식 삼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성령의 음성 주관 인도’ 말씀을 다 듣고 나서는 여러분도 성령의 음성 들을 수 있는 분들이 되어야지요. 사업하시는 분들도 성령의 음성, 주관, 인도받으면 아니 될 것도 되고 될 건 더 잘되고 만사형통할 것입니다. 신속히 말씀을 무장하고 그 말씀을 영적으로 이해해서 영으로 일군 만큼 성령의 음성, 주관,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업을 한다면 안 되는 것은 아버지 막으시고, 될 것은 되게 하시고 안 될 것도 하나님의 뜻이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잠언 16장 1절에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 하셨습니다. 내가 아무리 마음에 경영할지라도 하나님이 인도하시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인도하신다고 했는데 안 되는 것은 왜 일까요? 육신의 생각을 동원해서 하나님이 동으로 가라 하는데 서로 가면 하나님이 축복된 길로 인도하실 수가 없지요. 내가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양심의 악, 본성 속의 악까지도 발견하여 빼내어 버릴 때에 밝은 성령의 음성, 주관, 인도를 받을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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