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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옥(9)
설교자 당회장 이재록 목사 설교본문 눅16:22-26 날짜 2001.01.28
지난 시간에는 구원받지 못하고 죽은 영혼들이 지옥의 아랫음부에서 받는 형벌 중에서 세 번째 단계에 속하는 사울의 형벌에 대해 말씀드렸고 오늘은 마지막 네 번째 단계의 형벌에 대해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1. 지옥으로 가는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 추수할 일꾼들을 찾으시는 주님
지금부터 약 2천 년 전,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각 성과 촌에 두루 다니면서 복음을 전파하시고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셨습니다. 이 때 참으로 안타까워하신 것이 있는데 바로 마태복음 9:36에 기록된 것처럼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었습니다. 구원받을 영혼들이 수없이 많은데 이들을 돌아볼 참된 목자가 없었던 것이지요. 예수님께서 아무리 열심히 백성들 가운데로 다니실지라도 혼자서는 그들을 하나하나 섬세하게 돌아보실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은 적으니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대신하여 뜨거운 사랑으로 수많은 영혼들에게 진리를 가르치며 어두움의 세력을 물리쳐 줄 수 있는 일꾼들이 너무나 필요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수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알지 못함으로 죄의 종이 되어 질병과 가난과 눈물, 슬픔 가운데 고통받으며 지옥으로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날도 안타까워하며 추수할 일꾼들을 찾고 계신다는 사실을 깨달아 성결의 복음을 듣고 영계의 깊은 것들까지도 배우신 여러분들이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2. 사망에 이르는 죄를 범한 사람들이 형벌을 당하는 지옥의 3, 4단계
성경에는 사람이 죄를 범할 때에도 회개하여 용서받을 수 있는 죄가 있는 반면, 영영 용서받지 못하는 죄가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요일 5:16). 이렇게 죄사함 받지 못할 죄를 지은 사람들이 바로 지옥의 아랫음부에서 받는 형벌 중 가장 중한 네 번째 단계의 형벌을 받게 됩니다. 그 중에서 상대적으로 죄가 경(輕)한 사람들은 세 번째 단계의 형벌을 받습니다.

그러면 사함 받지 못하는 죄란 과연 무엇일까요?
먼저, 히브리서 6:4-6을 보면 '구원받고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며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다시 타락한 자들은 회개할 수 없다'고 말씀했고, 히브리서 10:26에는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하면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다'고 말씀했습니다.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가정이나 일터에 시험 환란이 임하여 큰 고통을 받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해결 받은 사람들, 혹은 온갖 불치병이나, 난치병으로 고통받다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건강을 되찾은 사람들이 한때는 성령이 충만하여 열심히 간증하다가 어느 순간 세상의 유혹이 틈타면 떠나 버리는 것입니다. 이들은 예전에 주님을 알지 못했던 때보다 더욱 정욕적으로 세상에 빠져 버리기도 하고, 더 악한 경우에는 자신이 변개한 것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교회를 욕하고 주의 종이나 성도들을 비방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진리를 알면서도 계속 마음을 강퍅히 하여 세상을 좇아 짐짓 범죄하는 사람들에게는 회개의 영이 주어지지 않으므로 그 앞날에는 무서운 지옥불만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사함 받지 못하는 죄에는 성령을 훼방하고 모독하며 거역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스스로는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성령의 역사가 충만한 교회들을 보면 자신이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만으로 반감(反感)을 가지고 '사단의 역사다, 혹은 이단이다' 정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을 봅니다.
이처럼 믿는다 하면서도 성령을 대적한 사람들이나 성령의 역사를 확실히 체험하고도 배신한 사람들은 회개의 영이 오지 않으므로 회개할 수가 없으니 죽은 후에는 불신자들보다 더 큰 정죄를 받아 지옥의 아랫음부에서도 세 번째나 네 번째 단계의 중한 형벌 속에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3. 지옥의 아랫음부에서 십자가에 달려 4단계의 형벌을 받고 있는 가룟 유다
아랫음부에서 네 번째 단계의 형벌을 받는 영혼들은 사함받지 못할 죄를 범한 사람들 중에서도 양심에 화인 맞은 자들입니다. 또한 완전히 마귀의 종이 되어 하나님을 대적한 자들이며 성령을 심히 거역하고 모독하며 훼방했던 자들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친히 못박은 것과 같은 정죄를 받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저주와 형벌을 대속하고자 십자가에 달려 보혈을 흘리셨지만, 이들은 예수님의 보혈로 사함받지 못할 저주 가운데 빠진 영혼들이기에 그들의 형벌은 각자 자기의 십자가에 달린 채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배신자의 대명사로 알려진 가룟 유다가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그는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을 친히 보았으며 그의 제자가 되어 말씀을 배우며 놀라운 기사와 표적들을 친히 체험했지만, 끝내 자기 욕심과 죄악을 버리지 않음으로 사단의 사주를 받아 예수님을 유대인들에게 팔아 넘겼습니다.
가룟 유다는 늦게나마 자기의 죄를 깨닫고 후회했지만, 회개의 영조차 주어지지 않았으며 그 죄의 짐이 얼마나 중하였던지 마음의 고통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을 매달아 자살하고 말았는데 성경에는 그 시체마저 땅에 떨어지면서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오는 등 그의 비참한 결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행 1:18). 이렇게 죽은 가룟 유다는 아랫음부에서도 맨 앞의 십자가에 매달려 피를 흘리고 있습니다.
가룟 유다를 필두로 해서 하나님을 심히 대적한 또 다른 영혼들이 달려있는 십자가가 쭉 늘어서 있는데, 이 음산한 광경은 마치 전쟁 후의 공동묘지나 혹은 짐승을 잡아 매달아 놓은 도살장을 연상케 합니다. 그리고 가룟 유다의 머리에는 굵은 가시나무로 만든 관이 씌어져 있는데 온몸을 휘감은 가시관의 가시는 계속 자라나 피부를 찢고 두개골 사이를 파고들어 부드러운 뇌수를 찔러댑니다.
가룟 유다가 달린 십자가 아래에는 지옥에 떨어진 다른 영혼들이 있습니다. 그들도 세상에 있을 때에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큰 악을 쌓아가므로 양심에 화인 맞은 자들이라 지옥에서 심한 고문을 당해 몰골이 말이 아닌데, 고문이 심한 만큼 악을 발하고 저주하면서 가룟 유다의 몸을 창으로 찔러대는 것입니다. 이 때 타락한 천사들은 "저가 구세주를 팔아 넘긴 자라 저가 우리에게 이같이 이롭게 하였도다 정녕 잘하였도다 웃기는도다" 하며 그를 조롱합니다.
그러므로 가룟 유다는 지옥의 아랫음부에서 육체에 가해지는 형벌의 고통과 조롱을 받으며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을 팔아 넘김으로 저주받은 것을 영원히 기억하면서 정신적인 고통도 함께 받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의 배신을 미리 아셨고 그의 영혼이 어찌될 것도 아셨으며 결국 그 마음을 돌이키지 않을 것도 아셨습니다. 그래서 마가복음 14:21에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지요. 우리는 이러한 사건을 통하여 지옥의 네 번째 단계가 아닌 가벼운 첫번째 단계의 형벌을 받는다 해도 지옥에 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처음부터 태어나지 않은 것이 더 낫다는 사실을 깨달아 결코 지옥에 떨어지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4. 심히 성령을 훼방, 모독, 거역한 사람들의 경우
개척 이래로 본제단에는 성령의 역사를 통해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과 권능으로 나타나는 여러 가지 기사와 표적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것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역사를 직접 체험한 이들 중에서도, 심지어는 죽음의 문턱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난 사람 중에서도 시간이 지나면 본제단을 버리고 세상으로 향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때로는 교회를 훼방하며 있을 수 없는 말을 지어내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경우까지도 있지요.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 중에서도 심히 성령을 훼방, 거역, 모독한 몇몇 사람들을 예로 들어 그들이 앞으로 어떤 형벌을 받을 것인지에 대해 알려주셨는데, 먼저 한 부부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하나님을 심히 대적함으로 불항아리 속에서 차례로 형벌을 당하는 부부
"내가 저와 부부의 연을 맺은 것을 후회하고 저주하노라 내가 어찌 이와 같은 곳에 와 있을꼬, 저로 인해 내가 미혹을 당하였도다"
이 내용은 지옥에서 네 번째 단계의 형벌을 받고 있는 한 부부 중 아내의 탄식소리입니다. 악한 남편으로 인해 함께 하나님을 대적함으로 이에 대해 원망하고 저주하는 내용이지요. 이처럼 육적인 정으로 인해 남편의 악함과 짝하여 하나님을 크게 대적하는 죄를 범하고 당하는 형벌은 무엇일까요?
어떤 액체가 담긴 항아리 밑에 불이 지펴있고 그 항아리 안에 한 사람씩 번갈아 들어가게 됩니다. 항아리에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고약한 액체가 가득 담겨 있는데, 그 안에 사람을 집어넣으면 뜨거운 고통은 물론, 마치 두꺼비의 등살처럼 몸이 부르트고 물집이 잡히며 안구가 튀어나오는 등 갖가지 고통을 받게 됩니다.
이 고통을 면하려고 수면으로 머리를 내밀면 항아리 위로부터 커다란 발이 내려와 밟아 버립니다. 그 발은 바로 고문하는 지옥 사자의 발인데 발바닥에 쇠꼬챙이 같은 못이 빽빽하게 솟아 있어서 밟힌 영혼은 상처투성이가 되어 다시 항아리 속으로 밀려들어가는 것이지요.
그러나 잠시 후에는 고통을 견디지 못해 다시 수면 밖으로 나오는데 그러면 발에 밟혀서 다시 밀려들어가기를 반복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형벌은 한 번에 한 사람씩만 당하기 때문에 남편이 고문받는 것을 아내가 보아야 하고 아내가 형벌을 당하면 그 남편이 형벌의 장면을 지켜보게 됩니다.
이 항아리는 투명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부부의 정으로 인해 상대가 받는 형벌을 보고 심히 애통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상대가 고통을 받는 동안 한 쪽이 고통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그 순간부터 항아리 속에서 고통받는 상대를 보면서 '저를 건지지 말고 그 안에 더 있게 하라 내가 더 쉬겠으니 저를 그대로 두라'고 지옥 사자에게 아우성을 칩니다.
그런데 상대가 고통받는 것을 구경한다고 해서 진정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음이 자기 차례인 것을 알기에 잠시 쉰다 해도 그 고통은 여전한 것이지요. 또 자신의 고통이 극심하여 견디지 못할 때는 사랑했던 상대라도 그가 대신 고통받기 원하는 추악한 모습이 바로 썩어질 육의 실상이요 지옥의 실상이므로 원망과 저주가 끊이지 않습니다.
남편을 따라 하나님을 대적한 것을 후회하는 아내가 '너 때문에 내가 이 고통을 당한다' 원망하면 남편은 오히려 큰 소리로 욕하며 자기의 악행에 동조했던 아내를 원망하고 저주를 퍼부어대는 것이지요. 이 때 지옥 사자들은 참으로 기뻐하며 마치 재미있는 영화라도 보는 것처럼 흥미진진하게 지켜봅니다. 그리고는 흥을 돋구려고 항아리 아래의 불을 더 뜨겁게 지피는데, 이러한 고통이 커지는 만큼 서로가 주고받는 저주는 더 커질 뿐만 아니라 그 내용도 독해지고 지옥 사자들의 웃음소리는 더욱 커집니다. 다음 시간에 이어서 증거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지옥에서 중한 형벌을 받고 있는 영혼들을 생각하여 기도, 전도, 심방에 더욱 힘쓸 뿐만 아니라 자신을 돌아보아 더욱 마음에 할례하며 온전한 구원에 이르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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