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 예배

제목 성령이 도우시는 신앙   [요 14:16]
설교자 당회장 이수진 목사
등록일 2024.05.19
성령강림 주일을 맞아 보혜사 성령이 도우시는 신앙생활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성령은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예수님께서 맺으신 복음의 열매 곧 제자들과 성도들에게 처음으로 임하셨습니다. 120명쯤 되는 성도들이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할 때였지요. 성령이 임한 후 성도들은 충만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고 초대교회에 폭발적인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사도행전 2장 46~47절에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말씀한 대로였지요. 사도들을 비롯해 초대교회 일꾼들은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또 성령의 섬세한 인도를 받아 복음을 활발하게 전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보혜사 성령을 예수님의 제자들이나 초대교회 성도들뿐 아니라 모든 자녀를 위해 보내 주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신앙생활을 하면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충만하게 신앙생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성령이 도우시는 신앙생활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내 안에 계신 성령을 믿어야 합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에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했습니다. 곧 누구든지 자기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면, 즉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면 마음에 성령을 주십니다.
물론 성령은 눈에 보이지 않으나 하나님께서는 성령이 분명히 계심을 여러 가지 증거로 보이셨습니다. 예를 들어, 세례 요한은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같이 하늘로서 내려와서 그의(곧 예수님의) 위에 머물렀더라” 증언합니다(요 1:32). 성령은 어떤 형체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실체임을 하나님께서 세례 요한의 영안을 열어서 보게 하신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1~4절에도 초대교회 성도들이 자기들에게 성령이 임하시는 것을 보았고 그 능력을 체험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했지요. 사도들은 성령 충만함을 입어 권세 있는 말씀으로 단번에 수천 명도 회개시키며 주 예수의 이름 앞에 굴복시켰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우는 등 놀라운 기적도 행했지요. 이 모든 것이 바로 성령이 실체로 존재한다는 증거입니다.
성령이 여러분 안에 계신 증거는 꼭 영안이 열려야만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라,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것도 성령이 계심으로 가능한 것이지요. 하나님 전에 나와 예배하고 기도하며 찬양하는 것도, 여러분 안에 계신 성령이 믿음을 주시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내 안에 정말 성령이 계시나?’ 하고 의심합니다. 또는 ‘내가 이런 죄를 범했는데, 이렇게 말씀 안에 살지 못하는데, 성령이 소멸한 것은 아닐까?’라고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새신자 중에는 아직 성령을 받지 못한 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길가 밭의 마음이 아니라면 대부분 성령을 받았을 것입니다. 설령 죄를 지었다고 해도 대부분의 죄는 회개하고 다시 말씀 안에 살고자 노력하면 하나님께서 사해 주시니 죄를 지었다고 해서 성령이 쉽게 소멸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성령이 소멸하는 죄도 있습니다. 죄인 줄 알면서도 짐짓 죄를 짓거나 주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등 사망에 이르는 죄를 계속 지어간다면 성령은 소멸합니다. 그런데 사함 받기 어려운 죄를 지었어도 어찌하든 돌이켜 말씀 안에 살려고 하면 다시금 은혜를 주시지요. 그러나 이미 성령이 소멸한 사람은 대부분 하나님을 떠납니다. 혹여 교회에 다닌다고 해도 중한 죄를 지으면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지요. 양심에 화인 맞아 사단의 종으로 살아가기도 합니다.
이러한 경우가 아니라면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의심하거나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 안에 성령이 계심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또한 성령을 신뢰해야 합니다. 보혜사 성령이 나를 도와주시는 분임을 믿고 늘 의지해야 하지요.
주님을 영접하면 옛사람의 모습은 벗고 하나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이지요. 그런데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만나기도 하고, 이해가 잘 안되는 것도 있습니다. 이때 성령이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도록, 알 수 없는 것은 알 수 있도록 도와주심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성도가 자기 자신을 의지합니다. 예를 들어,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믿고 기도한다고 하면서도 자기 생각대로 결정해 버리는 것입니다. 기도했으면 성령의 주관을 기다려야 하는데 자기 생각에 좋은 대로, 자신이 원하는 대로 결정하지요. 여전히 자기가 살던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계속 자기 자신을 의지하면 나중에는 성령이 무어라 말씀하시는지, 무엇을 깨우쳐 주시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자기 생각대로 결정하고 행하니 성령의 열매가 아닌 육신의 생각의 열매를 맺고, 좋은 열매를 맺기도 어려우며 쉽게 갈 길도 돌아서 어렵게 가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을 하든지 항상 내 안에 계신 성령에게 묻기를 바랍니다. 에베소서 6장 18절에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한 대로 성전에 나와 기도할 때만이 아니라, 매 순간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여쭈어 성령의 주관을 받아 행해야 합니다. 이것이 내 안에 계신 성령을 믿고 의지하는 법입니다. 무엇을 보고 느끼고 결정할 때 이것이 진리인지, 아닌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실지, 아니 하실지를 점검해 가면 성령이 여러분을 주관하시기가 더 쉽습니다. 처음에는 일일이 물어야 하지만 연습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성령의 주관대로 행동하게 되고, 성령의 주관을 분별하는 것이 조금도 어렵지 않습니다.


2. 성령이 깨우쳐 주시는 선의 말씀을 무시하지 않아야 합니다

성령은 단에서 증거되는 말씀을 통해서나 성령의 음성으로 선에 대해 깨우쳐 주십니다. 그런데도 ‘이 말씀은 나에게 해당하는 말씀이 아니다.’ 하고 마음 문을 닫아버리면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선한 마음을 이룰 수도 없고 믿음도 성장하지 않으니, 제자리걸음만 하지요.
예를 들어 영적인 사랑, 선, 성령의 열매 등 영의 마음에 대해 많이 듣고 성령은 말씀을 통해 늘 최고의 선을, 장성한 분량의 믿음을 이루는 길을 깨우쳐 주십니다.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에 가는 길로 인도하시지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 모든 말씀을 자신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으십니까? 아니면 ‘저렇게 높은 차원의 선은 내가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저런 믿음의 행함은 아직 내 능력으로는 할 수 없다.’ 하고 스스로 단정해 버리시지는 않는지요?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항상 믿음의 눈으로, 선하게 바라보십니다. 최고의 선을 이룰 수 있고 믿음의 선진들처럼 큰 믿음을 가질 수 있다고 믿음으로 바라봐 주시지요. 각자 믿음의 단계에서 무엇을 깨우쳐야 하는지, 무엇을 행해야 하는지 성령을 통해 깨우쳐 주십니다. 깨달은 것을 행할 수 있도록 자상하고 섬세하게 인도해 주시지요.
그런데 성령이 아무리 깨우쳐 주셔도 그 깨우침을 무시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성령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늘 깨우쳐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함을 알려주시지요.
로마서 5장 5절에 “…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성령의 역사를 따라 하나님의 사랑을 믿어드리는 것이 바로 선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나는 아직 하나님의 사랑을 느껴보지 못하고 체험하지 못해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 하며 말씀을 외면합니다. 하나님과 원수인 육신의 생각을 동원해서 선의 말씀을 무시하는 행함이지요. 이렇게 계속 성령의 깨우침을 무시하면 성령이 주관하시는 선한 생각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도 느낄 수 없고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은혜도 받을 수 없지요.
다른 예로, 성령은 말씀으로 새 예루살렘에 갈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나는 예전에 이러이러한 죄를 범했으니 나와는 상관없는 말씀이다.’ 생각합니다. 철저히 회개하고 오직 새 예루살렘만 바라보고 달려가면 된다고 성령이 깨우쳐 주셔도 부정적인 생각을 깨뜨리지 않지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선의 말씀을 들려주실 때 오직 ‘아멘’하고 자신의 것으로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3. 성령을 의지해 성령의 인도 따라 하나님 뜻대로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도록 늘 이끌어 주십니다. 여러분 자신 또한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는 의지를 보여야 합니다. “내 안에 성령이 계신 걸 믿으니까, 선한 것을 깨닫게 해 주시니까, 다 하시니까.”라고 성령에게만 모든 책임을 돌리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편에서도 깨우쳐 주시는 것을 깨닫기 위해, 깨우쳐 주신 대로 행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성령이 내 안에 계시니 나는 가만히 있어도 성령이 알아서 인도해 주시고 주관해 주시니까 다 된다.’ 생각하는 것은 참으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내 안에 계심을 지식적으로만 아는 육적인 믿음일 뿐이지요.
나를 도우시는 성령이 내 안에 계심을 참으로 믿는 사람은 성령의 주관을 받기 위해 말씀 듣고 기도하기를 사모합니다. 깨우쳐 주시는 대로 순종하기 위해 부단히 자신을 치고 복종시켜 나가지요.
물론 때로는 주관하시는 대로 행하는 것이 어려울 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때도 나를 도우시는 성령을 믿는 사람은 ‘내 안에 성령이 계시니 나도 할 수 있다.’ 하고 믿습니다. 나를 도우시는 성령을 의지하여 힘써 노력하지요.
처음에는 이렇게 노력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행함이 쌓이는 만큼 성령의 음성을 듣는 것도, 성령의 주관과 인도를 받는 것도 점점 쉬워집니다. 그래서 늘 성령이 도우시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이때부터는 신앙생활이 어렵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 자신을 의지할 때 신앙생활이 어렵다는 것을 중심에서 느끼게 됩니다. 이제는 “성령이 계셔서 신앙생활이 참 쉽습니다.” 하고 고백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은 인생의 연약함을 아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 자체입니다. 죄를 지으면 죄에서 돌이켜 구원에 이르도록 인도하시기 위해,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더 깊이 깨우칠 수 있도록 성령을 보내셨지요.
그러므로 육신의 생각을 동원해 성령을 마음속 잠잠히 계시게 할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마음껏 도우시도록 하시기를 바랍니다. 항상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늘 평강과 희락이 넘치고, 온전한 평강과 최고의 희락이 있는 새 예루살렘까지 형통하게 이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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